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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당신, 아직 거기 있나요?” / 김보협

등록 2017-04-09 18:38수정 2017-04-09 18:56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회사 옥상공원 벚나무 아래서 익어가는 봄을 본다. 지난겨울을 치열하게 살았기에 이 봄이 있구나, 이글거리던 수많은 촛불이 대선을 봄으로 당겼구나, 한달 뒤에 맞을 늦봄은 또 어떤 색깔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나의 대선을 복기하는 잡념으로 번지고 말았다.

1987년 12월, 이듬해 지낼 공간을 둘러보다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서울 명동성당이었다. ‘죽 쒀서 개 준’ 결과를 받아든 참담한 상황에서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은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였다. 유권자로 치른 첫 대선인 1992년 대선 땐 선거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민주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다. 대학 졸업과 입대를 미루고 전념한 터라 훈련소로 가는 날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더 서러웠다.

기자가 되어 치른 네 번의 선거는 뭍에 오른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역동적이었다. 사회부 기자였던 1997년 대선은 ‘부정선거, 내 눈에 걸리기만 해봐라, 작살을 내주마’ 다짐하며 현장을 쏘다녔지만 그들은 여러 수 위였다. 국가안보를 부르대던 자들이 적대세력을 만나 휴전선에서 총 쏴달라 요청하는 고공전을 벌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002년엔 민주당을 출입하는 막내 기자로, 이제는 유행이 돼버린 국민 참여 경선과 대선 유세 현장을 누비다 보니 몇 개의 연설문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해 겨울은 ‘형광등 100개’ 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2007년엔 ‘비비케이(BBK) 의혹’을 취재하다 노조 전임자가 되어 대선 땐 비켜서 있었고, 2012년엔 안철수 캠프를 출입하다 단일화 이후 문재인 캠프로 옮겼다. 선거일 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축하잔치 무대에 박근혜 당선자가 오르는 걸 지켜봐야 했다.

돌이켜보면 쉬운 대선은 단 한번도 없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 등장하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바라는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이길 때는 간신히 이겼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절박함이 보태진 결과였다. 그래서 한달 뒤 대선 개표 방송을 느긋하게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좋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로 시작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헌법 전문 일부)하기 위해 여러 난관을 이겨가며 여기까지 끌고 온 ‘촛불’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얘기지만 현실이 그렇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적폐세력은 포기를 모른다. ‘우리가 잘못해서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됐으니 이번엔 야당이 주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집권하겠지’는 그들의 상식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갈 꼼수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5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대선은 늘 새롭지만 정말 이런 대선은 처음이다. 봄 대선도 처음이고, 야당 후보들이 유권자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는 대선도 처음이다. 촛불들에 의해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으로 낙인찍히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옛 여권의 대선후보들이 당선권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여론조사를 받아든 상황도 처음이다. 그래서 느긋해도 되는 것일까.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정치권력은 교체되는 것이니 양손에 떡 든 심정으로 즐겨도 되는 것일까. 저마다 ‘내가 꿈꾸는 나라’를 품에 안고 그 추위를 견뎠을 촛불들에게 묻고 싶다. 느긋하지 않다면, 불안하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물으며 답을 찾아야 한다. “당신, 아직 거기 있나요?”를 먼저 묻자. 그 겨울을 견디며 꿈꾸던 나라는 무엇인지,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당신의 대리인은 누구인지를.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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