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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적폐’는 인증샷이 아니다 / 김수민

등록 2017-04-12 18:54수정 2017-04-12 20:41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

민주주의, 너의 이름은? 1인 1표. 사람들은 그러나 그 하나를 인수분해하는 데 맛이 들었다. 좌우, 남북, 독재 대 반독재, 지역에 점점 빠져들던 우리는 이념, 성별, 연령, 세대, 종교, 재산, 소득, 계급, 기타 등등에 또다시 갇혀 간다. ‘기타 등등’에서 차라리 가능성을 발견할 만큼. 1 대 1의 대결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무능력한 민주주의가 상속받은 독재의 유산, “불안한 사람들은 새로운 적을 찾아 헤맨다”(넥스트, ).

내게는 되도록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예전 4년간 지방의원을 하면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3년 전 재선에 도전하던 시절, 어느 지지자는 예전 구미에서 일어난 단수사태나 불산사태 현장에서 찍은 활동사진을 쓰라고 조언했다. “없습니다.”

솔직히 난 결정적일 때 써먹을 사진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요즘 인양된 세월호 앞에서 사진을 찍은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의원들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처음에는 나도 비난했다. 한쪽 당을 비난했고, 그다음 드러난 다른 한쪽도 비난했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도 멈추지 않는다. 서로 상대 쪽이 더 문제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진에 들어온 인원이 하나인지 셋인지 넷인지에 따라 말이 달라지기도 한다. 욕이 뒤섞이니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의원들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도 간절히 인양을 기다렸던 시민들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달해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무력했던 건 아닐까. 3년 전 4월, 그 나날처럼 말이다. 다만 현장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도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남길 수 있는 게 사진밖에 없어서 남겨진 사진. 그 안으로 여러 사람들이 빨려들어간 풍경이다.

‘해소’해야 할 ‘적폐’에 몽둥이를 치니 더더욱 판이 들썩거린다. 요즘 지난 대선에서 ‘1번’에 투표한 사람들의 마음이 다친 모양이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5년여간 고생한 사람의 마음이 더 다쳤다”고 외친다. 이 모습 전체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거나 아예 등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나는 여기에 가깝다). 우리는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는다는 걸 곱씹어야 한다. 내가 구미시의회 의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각고의 교섭으로 맞춰놓은 표 가운데 하나가 의장단 선거 와중에 돌연 빠져나갔다. 이탈자를 잡으려는 의원도 있었고, 나도 한때 누굴까 추측했지만, 영영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이겼다면 그게 진짜 애초에 모인 12명이었는지 따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빼어난 세탁기라도 비밀선거의 기표소와 투표함에는 미칠 수 없다.

2015년 11월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에서 반대 여론을 분명히 보여준 영덕 주민들, 작년 여름부터 치열하게 사드 배치를 반대해온 성주 주민들. 대부분은 2012년 대선에서 기호 1번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무슨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헤아릴 수 없고, 투표장을 나오자마자 이들이 어떻게 천차만별 갈라졌는지 이루 셀 수 없다.

그런데 다들 1인과 1표를 인수분해하려고 한다. 나는 곧잘 경상도라는 바구니에, 남성이라는 굴레에, 30대라는 처지에, ‘진보’라는 입장으로 인수분해된다. 군대에 있을 적 누가 물었다. “너, 한나라당 지지하지?” 그런 식으로 인생에 루트가 씌워진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평생 동안 한나라당-새누리당 계열의 정당이나 후보에게 한번도 투표한 적 없는 나뿐만 아니라, 표와 사람은 모두 뭉치고 갈라진다. 적폐가 쌓일 틈도, 인증샷을 남길 여지도 없다.

아마 다들 지금에 이르기까지 분풀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내 마음이기도 하다. 나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택한, 노무현이나 김대중에 머무르던, 이승만과 박정희로 거스르던 그런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비난했었다. ‘적폐’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자신 안에 쌓인 침전물일 것이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비난했던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고, 그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여기까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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