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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죽을 때까지 강용주

등록 2017-04-17 18:22수정 2017-04-17 19:07

이명수
심리기획자

강용주가 재판에 회부됐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기소라는 말을 듣고는 더 놀랐다. 1999년에 출소했으니 세상 밖 시간이 18년인데 아직도 과거의 쇠사슬이 현재를 옥죄고 있다니 놀랄밖에.

강용주는 5·18 광주항쟁 때 총을 들었던 고3의 시민군이었고 의대 재학 중 전두환 정권의 조작 의혹이 있었던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35일간 고문을 당한 후 14년간 복역한 양심수다. 전향제도에 저항해 옥중에서 도합 300일간 단식투쟁을 벌였고 국제앰네스티가 정한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결국 사상전향제도를 무너뜨렸다. 지난해까지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이었고 현재는 서울 시내에 의원을 열어 통증치료로 이름을 얻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그런 이가 재범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18년 동안 국가의 감시 대상이었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이달 28일에 재판을 받으라는 것이다.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3년 이상의 형기를 마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감시법이다. 2년마다 갱신되지만 법무부 장관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죽을 때까지 국가가 사생활을 감시할 수 있다. 그간의 보안관찰 갱신 사유들은 대체로 이러했다.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폐지 주장을 했다’ ‘각종 집회에 참석했다’ ‘처의 수입에 의존하여 하류생활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사용을 잘하고 활동능력이 왕성하다’ 등 이유가 지극히 자의적이고 반인권적이다.

보안관찰 처분을 받으면 3개월마다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고해야 한다. 이사를 가도 알려야 하고 경찰이 새벽에 불쑥 전화를 해도 받아야 한다. 여행을 하려면 여행 목적과 기간, 동행자 등을 미리 신고해야 한다. 경찰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연락은 물론 집회, 시위 장소의 출입을 금지할 수도 있다. 가족, 친지뿐 아니라 집주인, 직장 동료, 성당 교인, 아파트 경비 등에게도 피보안관찰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거나 동태를 파악한다. 이미 형을 다 마쳤는데 죽을 때까지 수형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강용주는 감옥에서 14년간 전향서 날인을 거부하며 투쟁했다. 고문에 못 이겨 전향서에 서명을 하고 자살한 사람도 있고 고문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된 사람도 숱하다. 그런 상황에서 14년을 전향하지 않고 버티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걸핏하면 징벌방에 갇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개처럼 밥을 먹으며 그가 지키려고 한 것은 사상이나 신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였다고 했다. 그래서 전향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고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는 ‘이제 나는 세상에 빚진 게 없다. 나는 할 만큼 했다. 사회가 내게 다시 그런 책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용주는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공기 같은 것인지를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그 부분에서 강용주에게 빚졌다. 감옥 안에서 14년을 혼자 싸웠는데 다시 18년을 강용주 혼자서 이런 싸움을 감당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죽을 때까지 반복될지도 모를 싸움이다. 함께 싸워서 폐지시켜야 한다. 그건 곧 우리의 양심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이번 사건의 재판부가 판결을 보류하고 보안관찰법이 위헌이라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다시 해주길 바라고 있다. 상식적인 정권이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은 그런 상식적인 판단들이 일상적이 될 것이라는 소망들의 합이라고 나는 믿는다. 강용주가 있을 곳은 법정이 아니라 자유로운 일상이다.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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