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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트럼프는 군사적 해결을 원한다? / 서재정

등록 2017-04-19 18:36수정 2017-04-19 21:28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현란한 이론을 굳이 들이댈 필요는 없다. 기표나 말은 그 자체로 독립적 지위를 갖거나 객관적 진리를 내포하지 않는다. 다른 기표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주어지거나 사회 속에서 의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위기’는 한국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는 것일까?

올봄 내내 횡행하던 ‘한반도 위기설’은 칼 빈슨 항공모함 파견 결정으로 불이 붙었다. 니미츠호까지 파견돼 한반도 일대에 미국 항공모함 3척이 전개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며 그 불길은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관리들이 입에 달고 있는 ‘모든 옵션’은 군사적 수단으로만 이해됐다.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이 군불 역할을 했다. 거기서 한 것처럼 여기서도 할 것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그 직전 미-중 정상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불쏘시개 노릇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단지 위기론의 불길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우선 미-중 정상회담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주목할 만한 합의를 이뤘다.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다짐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자국의 불법적 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협력을 증대”하기로 합의했다. <폴리티코>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양 정상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한 것이다.

중국과의 합의 이후 트럼프 정부는 대북전략을 확정했다. 14일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한 대로 군사적 선택을 제외하고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정했다. ‘모든 옵션’을 고려했으나 군사적 옵션보다는 압박과 개입을 선택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미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조치보다는 정치적·경제적 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전략은 중국과 합의한 대로 ‘평화적 해결’이며 그 방법으로 압박을 강화하며 대화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관리들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6일 <에이비시>(ABC) 뉴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군사적 선택을 제외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17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미국은 “평화로운 수단, 협상을 통해서” 안보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위기론이 불길처럼 번진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국내 언론의 기사가 그 회로를 보여준다. 이 기사는 ‘최고의 압박과 개입’ 전략을 보도한 <에이피> 통신 기사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관계자는 북한 6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하며 ‘현 사태는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앞으로 북한에 대해 압박수위를 더 높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서 인용문은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이지만, 뒷부분은 기자가 거기에 ‘뜻’을 부여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발언이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반대로 압박수위를 더 높이겠다는 뜻이 부여됐다. 평화의 가능성은 죽이고 위기의 불길은 지피는 회로가 한국 사회에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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