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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인조 수세미

등록 2017-04-19 18:38수정 2017-04-19 21:37

전우용
역사학자

인류가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기 시작한 이후, 사용한 그릇을 깨끗이 닦아 청결하게 보관하는 일은 가장 단조롭고 반복적인 노동이 되었다. 청소나 빨래는 매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설거지는 매 끼니마다 해야 한다. 요리는 창조적인 일이나, 설거지는 단순한 일이다. ‘애처로운 젖은 손’을 만드는 주범도 설거지다.

우리나라에서 그릇을 닦는 도구로는 지푸라기 얽은 것이나 말린 수세미가 사용되었는데, 주부들이 특히 애호한 것은 수세미였다. 수세미는 오이과의 채소로서 그 열매는 먹고, 나무 수액은 화장수로 썼으며, 열매껍질과 씨를 제거한 섬유질은 말려서 설거지 용구나 때밀이 도구, 신발 안창 등으로 썼다. 수세미는 여름에 그늘을 만드는 데에도 유용한 작물이었다. 이처럼 쓸모가 많았기 때문에, 1960년대 초에는 정부에서 수출용 작물로 재배를 장려하기도 했다.

1969년 초, 화남산업이 미국 3M사에서 원료를 수입하여 ‘스카치 수세미’를 제조, 판매하기 시작했다. 나일론에 광물질을 접착하여 만든 이 물건은, 예전의 수세미보다는 용도가 제한적이었으나,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무쇠, 도자기 등 그릇의 재질을 가리지 않았을뿐더러 세척력도 뛰어났기 때문에 순식간에 주방을 장악했다. 1976년에는 인조 수세미에 특수연마포를 부착한 ‘깔깔이 수세미’와 스펀지를 부착한 ‘깔깔이 스폰지’가 국내 특허를 얻었다.

인조 수세미는 현대인들이 자주 손에 쥐는 물건이자 부부관계의 평등지수를 표시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물건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수세미가 본래 채소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사람도 많다. 수세미의 역할을 대신하는 물건이 나와도 수세미는 수세미다. 주권자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을 고르더라도, 진정한 주권자가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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