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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새 경제체제의 비전으로 경쟁해야 / 박현

등록 2017-04-23 18:43수정 2017-04-23 18:49

박현
경제에디터

이번 대선에서 외교안보 이슈가 주로 부각되면서 경제 이슈가 홀대를 받는 분위기다. 유력 주자들의 경제정책이 비슷비슷해 보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후보들이 내놓은 10대 공약과 티브이 토론 등을 보면 경제공약에 흥미로운 대목들이 적지 않다. 유력 후보 간 경제철학의 뚜렷한 차이도 드러난다.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경제정책에서 진보와 보수 후보들 사이의 수렴 현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복지 강화는 다섯 후보 모두가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예컨대, 아동수당제 도입은 다섯 후보 모두가 내세웠는데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보수파가 꺼려왔던 최저임금 인상도 심상정, 유승민 후보가 똑같이 2020년까지 1만원 인상이라는 공약을 내놨다. 두 후보는 증세를 주장하면서,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압박하는 기이한 장면도 연출했다.

재벌 개혁은 문·안·심 후보 외에 유 후보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들 네 후보는 재벌 중심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중소·벤처기업 육성으로 균형 잡힌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공통적으로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을 기존의 재벌·관료 주도, 성장 위주 정책으로는 더 이상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저성장이 구조화되고 있는데다, 소득 불평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닫고, 저출산·고령화는 세계 최고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후보들이 주요 이슈들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지만, 제시하는 대안에서는 차이점도 분명해 보인다. 문·안 후보의 경우 참모진에 개혁적 인사들이 포진해 있어 재벌 개혁 등 유사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상당히 차이가 발견된다. 문 후보는 1월18일 연설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비상경제조치 수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동원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과 재정능력을 총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를 비롯한 공공부문 일자리 수를 81만개 창출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지난 13일 내놓은 ‘사람중심 성장경제’라는 주제의 연설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정부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유럽식 경제모델을 지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안 후보의 경제비전은 지난 10일 대한상의 강연에 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문 후보와) 근본적 철학이 다르다”면서 정부는 교육개혁으로 창의적 인재 양성, 과학에 투자해 기술 확보, 공정한 경쟁 구조 조성 등 3가지만 충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것은 기업과 민간의 몫”이라며 “정부가 돈으로 경제 못 살린다”고도 했다.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지향하는 듯하다. 유승민·홍준표 후보는 안 후보보다 더 미국식 모델 쪽으로, 심 후보는 문 후보보다 더 유럽식 모델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사에서 새로운 경제체제의 탄생은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930년대 중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노동권 보장, 복지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뉴딜정책, 그리고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대선은 부패 청산뿐 아니라, 새 경제체제의 틀을 짜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 촛불의 열기와 후보들의 인식을 고려하면 여건도 조성돼 있다. 대선 후보들은 색깔론 덧씌우기 구태에서 벗어나 경제비전의 실행방안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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