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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 홍은전

등록 2017-04-24 18:39수정 2017-04-24 19:04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스물넷에 뇌출혈로 우측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입은 송국현은 스물아홉에 꽃동네에 들어가 24년을 살았다. 2012년 그가 장애등급심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물었다. 50미터 이상 걸을 수 있습니까. 송국현이 목울대에 잔뜩 힘을 주어 대답했다. 웅.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웅. 그것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그는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동료들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그를 부러워했다. 수년간 탈시설을 준비하던 그의 동료가 막상 나갈 날짜를 받아놓고는 마음을 뒤집었을 때 송국현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경증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2013년 10월 송국현은 꽃동네를 나와 서울로 왔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밥을 할 수는 없었다. 10분이면 통과하는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었다. 작은 계단도 힘겨워했고 사람들과 부딪쳐 넘어지기 일쑤였다. 글을 몰라 지하철 노선도를 읽지 못했고 말을 하지 못했으므로 길을 묻지 못했다. 먹고 자고 기도하는 일만 반복되는 그곳과 달리 이곳은 세탁기를 돌려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고 가스불을 켜야 밥을 먹을 수 있으며 은행에서 돈을 찾아야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활동보조서비스는 1, 2급의 중증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었다. 등급을 조정해야 했다.

50미터 이상 걸을 수 있습니까. 송국현이 힘껏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는 횡단보도 하나 건널 수 없었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아니. 그는 매 끼니를 걱정했다. 한달 만에 그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지원했지만 그들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송국현은 두려움에 떨었다. 우울과 불안 증상이 시작되었다. 환청과 환시에 시달렸고, 불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해를 했다. 활동가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물었다. 오늘 밥은 어떻게 해? 잠은 누구랑 자? 수면제를 너무 많이 먹은 날은 죽은 듯이 긴긴 잠을 잤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3개월이나 걸려 받은 등급은 또다시 3급이었다. 의사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숫자로 환산되었는데, 그 값을 모두 합치면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타인의 도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의 장애는 2년 전에 비해 특별히 악화되지 않았으므로 등급을 조정할 수 없다고 했다. 변한 건 송국현의 장애가 아니라 그의 환경이었으나 등급심사센터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구청 장애인복지과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으나 그마저도 3급에겐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2014년 4월10일. 송국현은 장애등급제에 항의하기 위해 등급심사센터를 찾아갔으나 경찰에 가로막혀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섰다. 3일 후 혼자 있던 그의 집에 불이 났고 4일 후 그는 죽었다.

‘장애등급제 희생자’라고 그를 부르는 것이 영 마뜩잖은 이유는, 그 추상적인 것이 송국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구체적인 사람들, 의사와 등급 심사관, 사회복지 공무원과 경찰, 그리고 시설의 얼굴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송국현의 영정을 붙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령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박근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고 그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농성이 광화문에서 1709일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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