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홍준표는 오뚝이 정치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옥행을 기다리던 사람인데 이제 대통령을 넘보고 있다.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하더니 어느새 보수의 중심에 우뚝 선 것이다. 저렴한 언행을 거듭할수록 지지율이 오르다 보니 갈수록 기세등등하다. 보수는 이런 홍준표를 부여잡고 기어이 ‘살려다 죽는 길’을 가려 하는 것 같다. 홍준표의 치솟는 지지율에서 보수의 불길한 운명을 예감하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애당초 15~20%는 ‘태극기 우파’ 몫이었다. 황교안도 단숨에 지지율 15%를 돌파한 적이 있다. 성조기 흔들며 ‘빨갱이 죽여라’ 소리치던 이들,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하던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차마 대놓고 홍준표 지지한다는 말은 못한 채 눈치보고 머뭇거리던 이들까지 막판에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 거다. 이런데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홍준표는 선동엔 능할지언정 새로운 표를 끌어들일 능력은 없다. 합리적 보수·중도 가운데 그의 행태에 환호하고 나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바른정당 탈당파들이 곧바로 역풍을 맞는 현상이 홍준표의 본질과 한계를 잘 드러내 준다. ‘태극기 우파+알파’가 홍준표가 끌어모을 수 있는 표의 최대치인 셈이다. 2~3위는 몰라도 1위는 불가능한 세력 규모다. 어차피 홍준표는 ‘대선용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그에겐 세력도, 리더십도 없다. 한나라당 대표를 했다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다 5개월 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시도 때도 없이 막말 토해내고 독선적인데다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를 머리통 굵은 중진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선거 끝나면 친박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대번에 무장해제시키고 말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막말 보수’ ‘가짜 서민’이 어떻게 대통령을 넘볼 수 있느냐고 너무 분통 터트릴 일이 아니다. 바른정당 탈당파의 행동에 지나치게 흥분하는 건 건강에 해로울 뿐이다. 오히려 홍준표가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여기는 게 훨씬 속 편할 것 같다. 홍준표의 미덕을 열거하자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태극기 우파, 후진 보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덕분에 이런 집단이 집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을 거다. 앞으로 상당 기간 보수의 집권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데, 홍준표는 이에 대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물론 홍준표의 선전으로 기세가 오른 자유한국당은 선거 이후 온갖 위세를 다 부릴 것이다. 보수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고 리모델링하는 일 따위엔 관심조차 두지 않을 거다. 합리적 개혁보수로 거듭나는 건 요원한 일이 될 테고, 이런 보수를 파트너로 둔 진보·개혁도 커다란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이 나라 보수를 대표한다는 세력의 수준인 것을. 촛불이 한창 타오를 무렵 작가 이문열은 “이 땅의 보수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 죽어라, 죽기 전에”라고 일갈하며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기원했다. 보수에 대한 나름의 애정 어린 충고를 보낸 셈인데, 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얼마 뒤엔 “지금의 보수는 죽는 방법조차 모른다”고 탄식했다. 요즘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그리고 바른정당 탈당파의 모습을 보면 이런 개탄이 절로 나온다. “죽어야 사는데, 죽는 방법조차 찾지 못하니, 끝내 죽는 길로 가는구나.”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