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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등록 2017-05-15 17:58수정 2017-05-15 19:00

이명수
심리기획자

지난 일주일 문재인 대통령으로 행복했다. 당선 이틀 만에 세월호 재수사를 지시한 장면에선 눈물이 났다. ‘그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뿐인데 이럴 수가’라는 댓글은 베스트로 뽑힐 만했다. 허니문 기간이란 걸 잊지 말자 하면서도 불가항력적인 사랑에 끌리는 사람처럼 설렌다. 그러다가 누군가 내게 무임승차의 행복이라고 통박할까 싶어 혼자 쓰게 웃는다. 시중의 표현대로라면 전략적 투표를 하지 않고 소신투표를 했다. 그렇담 1번을 찍지 않은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뭔가를 기대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당선이 확정된 직후 올린 어느 작가의 트위터 글을 보고 착잡했다. 더 솔직하자면 경악했다.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거기간 내내 떠들던 사람들이 요구 사항을 줄줄이 올린다. 이루어지면 파라다이스가 될 그런. 수구가 이렇게 개판을 쳐놓아도 나라를 망쳐도 박박 긁어 50도 안 되는 진보들이. 자신은 세련된 진보라는 자들, 난 그들이 더 무섭다.”

난 그 말이 더 무서웠다. 지난겨울 태극기를 든 중년 여성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악다구니 썼다. ‘뽑지도 않은 것들이 왜 우리 대통령을 내려오라 마라 해.’ 들고 있던 촛불로 답을 대신하며 웃을 수밖에. 5번을 찍으면 사표가 된다고 몰아붙이던 1번 세력들이 사과할 때까지 저주의 글을 1만개쯤 올리겠다는 이의 말은 저질스러워서 반응하기조차 민망하다.

진영 구분 없이 독선과 배제의 말들로 대동단결한 느낌이다. 개별적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과 성찰이 없는 말들은 언제나 칼이 된다. 그 칼들은 부메랑처럼 다시 칼을 쥔 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명박근혜’ 시절의 9년은 대선 기간의 ‘홍준표’ 같은 이들이 범람하고 군림하던 시간이었다. 그들은 상시로 시민을 모욕했고 어거지를 썼다. 그 탓에 어떤 이들은 목숨을 잃었고 많은 이들은 안온한 일상을 침범당했다. 박근혜가 당선된 직후 해고노동자들과 거리에 있었다. 조롱하듯 밀어붙이는 경찰의 태도는 전에 없이 거칠고 위압적이었다. 그런 시간을 통과한 이들에게 정권교체는 지고의 가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음들도 있다. 선거기간 중 심상정 후보가 지나간 자리에는 유독 눈물이 흥건했다고 기자가 전했다. 청년, 여성, 성소수자가 많았다고 했다. 1번을 찍은 마음들도 간절했지만 5번을 찍은 마음들은 절박했다. 거기다 대고 네 소신은 나중으로 미루고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게 옳다는 윽박지름은 폭력이다. 한술 더 떠 안 찍었으면 니네 대통령 아니니 입도 벙긋 말라는 눈 흘김은 전근대적이다.

전향서에 사인만 하면 석방될 수 있는데 ‘자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독방에 갇힌 채 14년을 버틴 강용주 같은 이는 전략적이지 않아서 틀린 삶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한 구절에서 저릿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그 문장은 내가 경험한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공감적이었다. 거기에서 출발한 정권임을 어느 때고 얘기할 수 있다면 실패하라고 고사를 지내도 실패할 수 없는 정권이 될 것이다. 박사모들이 안간힘을 썼어도 결국 대통령 박근혜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게 민심이어서다. 각자 시민의 자리에서 한껏 응원하고 조심스럽게 견제하면 된다. 진보든 보수든 한 인간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 인간의 도리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같은 나라의 시민이고 각자 믿는 바가 조금씩 다른 이웃이다. 나도 옳지만 너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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