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선임기자
촛불→탄핵→정권교체로 이어지는 격변에는 최순실의 태블릿피시가 결정타 구실을 했다. 태블릿피시를 찾아내 보도한 건 <제이티비시>(JTBC)다. 하지만 태블릿피시가 세상에 나오는 데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아무리 유능한 기자라도 태블릿피시를 입수하지 못했을 거다. 그의 이름은 노광일(60). 서울 청담동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의 관리인이다. 대개는 경비원으로 불린다. 한달 봉급 140만원을 받아 생활하고 아이들 키우는 이름 없는 존재다. 기자는 2016년 11월초와 2017년 2월초 두 차례에 걸쳐 노광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으나 “정권이 바뀐 뒤 보도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제이티비시 기자가 사무실에 찾아온 게 10월18일이다.
“맞다. 그날 아침 어느 기자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자기 신분을 안 밝혀서 냉대했다. 한 시간쯤 지나 다시 찾아와 신분증을 보여주길래 ‘그러면 진작 말하지 왜 이제야 말하느냐’며 적극 협조해줬다.”
-4층 더블루케이 빈 사무실에는 어떻게 올라가게 됐나?
“기자가 ‘혹시 사무실 좀 들어가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한번 올라가 봅시다’ 하고 같이 올라가 문을 열어주고 ‘찾아보라’고 했다. 기자가 고영태가 쓰던 책상 쪽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봤는데 거기서 문제의 태블릿피시가 나왔다. 기자가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물론이다. 필요하다면 다 가져가라’고 했다.”
-더블루케이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니다. 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 수 있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문에는 보안장치가 있어서 보안카드를 대야 한다. 카드를 안 대고 문을 열었다가는 당장 보안업체 직원들이 출동한다. 내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보안카드를 대서 문을 열어줬다.”
-남의 물건을 가져가도록 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정도는 안다. 문제가 되면 법적인 책임을 지고 직장도 그만두려고 했다. 난 그저 조그만 단서라도 나와서 취재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줬다.”
-10월18일에는 제이티비시 말고도 <경향신문>과 <한겨레> 기자도 여기에 왔다. 왜 제이티비시만 도왔나?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손석희 사장을 믿은 거다. 두번째는 신문보다는 방송의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노광일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그는 전남 함평 출신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신문배달, 웨이터 일을 하며 방송통신고와 방송통신대를 나와 제약회사에서 27년 동안 일했다. 한겨레 창간 독자였고, 경향신문 독자 배가 운동을 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사모 활동을 했다. 지금도 그의 책상에는 노무현재단 달력이 있다. 펼쳐진 2월 달력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2003년 취임식 사진이 실려 있었다. 또 그가 출퇴근 때 메고 다니는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세월호의 그 노란 리본이다.
-참 우연이다. 최순실의 사무실이 있는 곳에, 그것도 결정적 증거인 태블릿피시가 있는 곳에 선생님 같은 분이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을까 하고. 아마도 하늘에 계신 우리 노짱님(노무현 대통령)이 이걸 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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