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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우표

등록 2017-05-17 18:39수정 2017-05-17 20:23

전우용
역사학자

신라 눌지왕 때 사람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혀간 왕의 동생들을 잇달아 구출하곤 왜에서 살해당했다. 그의 아내는 집 가까운 언덕 위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선 채로 굳어 돌이 되었다. 그녀를 돌로 만든 것은 잔인한 왜왕이나 무정한 남편이 아니라 ‘소식을 전할 길 없음’이었다.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과 물건을 전달하는 제도는 영역 국가 형성과 동시에 출현했다. 왕권이 미치는 범위는 국가 통신망이 미치는 범위와 일치했다. 하인을 둔 사람이 아니고서는 민간인 사이의 통신은 아주 어려웠다. 타지에서 우연히 만난 고향 사람에게 가족 친지의 안부를 묻고 전하거나, 자기 집 부근으로 가는 장사꾼이나 통신병에게 사정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민간인 사이를 연결하는 상업적 통신망은 1516년 프란체스코 데 타시스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제국 내 우편사업의 독점권을 부여받음으로써 출현했다. 우편요금을 선납했다는 증지인 우표는 1840년 영국에서 처음 발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884년 11월17일부터 서울과 인천 사이에 우편 사무가 개시되었다. 우표는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의뢰하여 미리 만들어 두었고, 우편인(郵便印)은 우정국 개국 직전에 도안을 확정했다. 발행된 우표는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짜리의 5종이었는데, 당시 화폐 단위가 ‘문’(文)이었기 때문에 이를 ‘문위우표’라고 한다. 우표만 사서 붙이면 우체국에서 원하는 곳까지 배달해 준다는 얘기를 들은 인천 사람들이 쌀가마니나 굴비 두름을 들고 우체국에 가서는 서울 어느 댁에 보내 달라고 떼를 썼다는 우스개가 전하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우표는 발행 빈도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데다가, 도안만으로 특정 시기 특정 사건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매체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집품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곧 새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가 나올 터. 수집가들이 소중하게 오래 보관하는 물건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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