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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국가학문위원회가 필요하다

등록 2017-05-21 19:37수정 2017-05-21 20:14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학문정책은 21세기 민주공화국 사회에 걸맞게 운영돼야 하고, 국가학문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적격일 것이다. 국가학문위원회가 들어서면 먼저 학자, 지식인, 연구자를 학문정책의 주체로 만들어 학문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창조성을 진작하는 데 그들이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늘 칼럼의 제목은 12년 전 <한겨레>에 기고하려고 썼다가 시기를 놓쳐 미발표 상태로 있던 글의 제목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그렇다, 우리 사회가 온전하게 발전하려면 국가학문위원회가 필요하다. 학문발전이 사회발전에 중요함을 굳이 되새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학문발전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일 텐데 학문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 그 발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체계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 유수한 나라 가운데 한국처럼 학문정책에 등한한 나라도 드물다. 지금도 선진 학문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 상황이다.

학문정책의 부재가 빚어낸 문제로는 대학의 황폐화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대학은 학문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취업 준비하는 학원에 불과하다. 학문발전을 위해서는 기초학문이 제자리를 잡아야 하건만 기초학문일수록 홀대받는 것이 대학의 모습이다. 학문이 교육의 하위 범주로 취급되는 것도 문제다. 한국에서 학문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기구는 교육부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학문은 원천 지식을 생산하는 활동이고 교육은 그런 지식을 재생산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둘은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학정책을 교육부가 관장하면 교육정책이 학문정책을 지배하게 되고 학문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기회가 봉쇄될 공산이 크다.

학문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학문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교육의 수준도 자동으로 떨어지고, 사회발전도 어려워진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유가 많겠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사회적 창조성이 떨어진 것도 그 하나다. 사회적 창조성을 높이려면 학문발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학문전략이 요청된다. 국가학문위원회를 설립하자고 하는 것은 이런 일을 체계적으로 할 국가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발달한 나라들은 대부분 학문 진흥을 위한 국가급 기관을 운영한다. 독일에는 국가학술위원회, 중국에는 사회과학원, 프랑스에는 국립과학연구센터, 미국에는 국립인문기금이 있다. 이들 기관은 하는 일이나 위상이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학문, 특히 기초학문 진흥의 역할을 맡는다. 한국에서는 연구재단이 비슷한 일을 하지 않느냐는 말도 가능하다. 하지만 연구재단은 교육부 산하로서 집행기구 수준에 머물러 학문정책의 이념과 원칙, 방향까지 수립할 곳은 되지 못한다. 학문정책은 이제 21세기 민주공화국 사회에 걸맞은 모습을 띠고 운영될 필요가 있으며, 국가학문위원회가 그런 일을 하는 데 적격일 것이다.

학문발전을 추구할 때는 창조성과 민주성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적 측면에서 보면 학문은 무엇보다 시민적 권리로서 보편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학문하는 사람이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고 생계를 위협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이런 권리는 의무와 함께 주어져야 한다. 다른 한편 학문정책은 사회적 창조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점이다. 이런 국면에서 학문정책은 새로운 인간적 지식과 기술, 역능을 어떻게 계발하고 보호할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 국가학문위원회가 다루어야 할 과제나 문제는 너무나 많다. 오늘날 학문은 어떤 모습과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학문을 진흥할 제도적 장치, 사회적 조건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 인문학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속한 서로 다른 학문 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학술적 연구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학에 속한 학과들의 형태는 어떻게 정해야 할 것인가, 차세대 연구자들은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등등이 그것이다.

12년간 묵혀둔 제안을 이렇게 다시 꺼내는 것은 그동안 실종되었다고 여긴 사회의 기본 상식과 원칙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바로 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본이 선 사회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궁리해야 한다. 학문을 제대로 발전시키는 것도 그런 일이다. 국가학문위원회가 들어서면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학자, 지식인, 연구자를 학문정책의 주체로 만들어 학문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창조성을 진작하는 데 그들이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국가학문위원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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