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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고속도로

등록 2017-05-24 18:34수정 2017-05-24 20:38

전우용
역사학자

1963년 12월 형식적인 민정이양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는 1년 뒤 첫 외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가 방문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분단 상태에 있던 서독이었다.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미국에서는 불러주지 않았고, 일본과는 수교 전이었다. 당시 서독은 ‘전범국가’라는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개발도상국 지원에 열심이었다. 6·25 전쟁 이후에도 몇 차례 한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으나 미국이 막았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일본이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의 네트워크도 일부 살아 있었다.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1년쯤 전부터 와 있던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고 서독 총리와 회담하는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하면서 서독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했다. 서독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분단국가라는 면에서 한국과 같았으나, 그것 말고는 비슷한 점이 없었다. 그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울창한 숲과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아우토반이었다. 그는 귀국 후 산림 녹화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고속도로 건설 준비에 착수했다.

경인고속도로는 1967년에 착공되어 1969년에 완공됐고,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에 착공되어 1970년에 완공됐다. 연인원 900만명이 동원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사는 ‘민족의 대역사’로 불렸으며, 한국의 산업지도를 바꿨다. 고속도로가 자기 땅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고 좋아했다가 낭패한 사람도 많았다. 1969년 4월12일부터 서울과 인천 사이에서 운행을 개시한 고속버스는 이후 급속히 늘어나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드는 주역이 되었다.

고속도로 개통 직후 이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성능껏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20년이 되지 않아, 고속도로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도로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짧았던 고속 시대를 생각하며 불평을 늘어놓을 뿐, 그 이전의 기나긴 저속 시대는 생각조차 않는다. 고도성장의 시대가 또 오기를 바라는 게 나을까, 아니면 저성장 시대에 맞는 삶의 양식을 찾는 게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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