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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정치인, 기자, ‘국민’ 또는 무지의 삼각형 / 김종엽

등록 2017-05-31 18:22수정 2017-05-31 20:53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날씨도 쾌청하고 새 대통령의 행보도 산뜻해 기분 좋은 오월이었지만, 진보언론과 문재인 지지자들의 갈등으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는 벌집 쑤셔 놓은 것 같았다. 이제 먼지가 가라앉은 듯하지만, 재연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뤄보려 한다. 가라앉은 먼지를 들쑤시지 않기 위해 구조적으로 접근해보자.

논의의 실마리로 한 정치인이 했다는 말을 인용하고 싶다. “정치인이 다 아는 걸 기자만 모르고, ‘국민’이 다 아는 걸 정치인만 모른다.” 냉소적이지만 교훈적인 경구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논란이 된 갈등을 다루려면, 역시 냉소적이지만 교훈적인 고리를 하나 더 채워 넣어 무지의 삼각형을 완성해야 한다. “기자가 다 아는 걸 국민만 모른다.”

왜 정치인이 다 아는 걸 기자는 모르는 걸까? 정치인은 기자에게 주요 취재원이다. 후자는 전자를 비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지만, 정보의 면에서 전자에게 의존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정보라는 미끼에 프레임이라는 바늘을 숨긴다. 낙종의 공포와 특종의 희열 사이에 놓인 기자는 미끼만을 떼먹을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것을 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이 다 아는 걸 정치인이 모른다. 정치인이 만나는 사람은 지지자 아니면 잠재적 지지자들이다. 정치인도 머리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생각해보긴 한다. 그러나 “사랑해요”를 외치는 지지자들의 열기에 그런 생각은 멀찌감치 달아난다. 그 결과 국민이 보기엔 가망 없는 선거에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국민은 왜 저럴까 싶지만, 그는 ‘제 맘속의 국민’만 믿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결과로 정치인 뒤통수를 내려치는 그 국민이 기자가 다 아는 걸 모른다. 늘 보도될 만한 것을 선별하고, 엠바고와 데스킹과 편집을 겪으며 사는 기자는 뉴스 세계의 지배자는 사실이 아니라 선별된 ‘편향적’ 정보라는 것을 안다. 여론을 조작하려는 사악한 기자든, 편향과 싸우려는 성실한 기자든, 이런 일을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피할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국민은 뉴스 없이 정치현실에 접근할 수 없다. 기자가 뉴스의 사제라면, 국민은 뉴스의 신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지지자와 진보언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기자가 아는 걸 마침내 국민도 알게 되었고, 무지의 순환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민들이 이전보다 언론매체의 작동이나 프레임 형성에 밝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인가? 국민이 직접 정치현장을 취재하고 ‘팩트체크’해서는 아니다. 언론사 수도 늘고 유사 언론매체도 늘고, 인터넷과 에스엔에스도 언론매체의 기능적 등가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정보와 해석 프레임 선택지가 많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전통적이든 새로운 종류든 뉴스 생산자에 대한 의존 상태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뢰했던 어떤 기자나 언론매체를 지금 불신한다면, 그것은 다른 새로운 뉴스 생산자를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매체 환경의 변화로 무지의 삼각형이 깨진 것이기는커녕 전보다 더 굉음을 내며 작동한다 하겠다.

그러니 정보가 정보를 대치하고 뉴스가 뉴스를 밀어내고 프레임이 프레임을 교체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내가 좋은 국민이고 좋은 지지자인가 하는 성찰 그리고 관찰이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맹점에 대한 자각이다. 그런 감각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경대수 의원이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국민에게 고백해야 했던 일을 비롯해 이런저런 불필요한 상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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