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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아파트 분양권

등록 2017-06-07 19:43수정 2017-06-07 20:53

전우용
역사학자

집이 낡아 곧 허물어질 지경이 되자 주인은 농한기에 날을 잡아 새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시골 구석에 건축업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장간에 못과 경첩 등 꼭 필요한 철물을 주문해 두고선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수밖엔 없다. 목수 일에 능한 사람에겐 특별히 잘 보답하겠노라고 약속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새집 짓는 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연장을 가지고 모여들어 헌 집을 헐고, 땅을 다지고, 주춧돌을 세우고, 기둥을 올리는 등의 일을 나누어 맡는다.

인류가 집을 짓고 산 이래 수천 년간, 시골집들은 마을 주민 모두의 공동 창작물이었다. 소문난 목수를 불러 짓는 저택들에도 마을 주민들의 땀은 어김없이 스며들었다. 물론 건축비의 상당 부분은 밥값과 술값이었다. 이렇게 지은 집들은 사람이 들어가 사는 집이지 돈 주고 사는 집이 아니었다. 벼슬살이하러 올라왔다가 벼슬 떨어지면 낙향해야 했던 서울에서는 집을 사고파는 일이 흔했지만, 그래도 집은 살기 위해 짓는 것이지 팔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집의 주된 의미를 ‘몸 담고 사는 곳’에서 ‘돈 주고 사는 것’ 쪽으로 이동시켰다. 공동묘지나 산기슭을 택지로 개발한 뒤 조각조각 나누어 파는 ‘분양’은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큰 공동주택 한 채를 칸칸이 나누어 여러 사람에게 파는 것도 분양이다. 1970년께부터 아파트 분양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업체들은 집도 짓기 전에 분양권부터 팔았으나 이걸 얻기 위한 경쟁이 너무 치열해 추첨으로 분양자를 결정했다. 분양권을 얻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웃돈을 얹어 팔았다. 오랫동안 아파트 분양 현장은 반칙이 공공연히 용인되는 도박판이었다.

부자 중 몇 사람이 존경받은 시대는 있으나, 부자 일반이 존경받은 시대는 없었다. 그러나 현대만큼 근면 성실 정직과 부(富) 사이의 거리가 멀리 떨어진 시대도 일찍이 없었다. 아파트 분양권은 ‘부의 부도덕성’을 심화시킨 대표적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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