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에디터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에 한창이다. 숨겨왔던 얘기 한 토막 이제 털어놔도 되겠다. ‘종일편파방송’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종편(종합편성채널)의 설립 근거가 된 언론관계법 개정안을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한 2009년 7월22일의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와이티엔>(YTN)을 시작으로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경영진을 갈아치웠다. ‘조중동’이라 불리는 세 신문사에 종편채널까지 선물로 안기면 정권교체는 정말 요원할 것 같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은 그 전년도부터 해를 넘기며 세 차례 총파업을 벌이면서 관련법 통과를 저지하려고 말 그대로 치열하게 싸웠다. 국회선진화법도 없던 시절, 새누리당을 거쳐 이제는 자유한국당이라 불리는 당시 집권여당 한나라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결과는 빤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던 날처럼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을 들어내고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기록을 업으로 삼은 터라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국회 바깥뿐 아니라 언론악법이 통과되던 본회의장 안에서도 종편이라는 괴물을 막기 위해 싸운 언론노동자가 있었다고. 본회의장 주변은 경비가 삼엄해 국회 출입기자들도 신분증 확인을 거친 뒤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최상재 위원장에게 짧은 문자를 남겼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언론노동자들의 뜻을 전할 테니 밖에서 열심히 싸워달라”고. 법이라는 무기로 폭력을 일삼는 자들과 맞설 땐 법 테두리 안만 고집하기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장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방송 앵커 출신인 이윤성 당시 국회부의장(한나라당)이 언론악법들을 상정하자마자 행동에 들어갔다. 우리의 언어로는 투쟁이었고, 그들에게는 난동으로 비칠 일이었다. 최 위원장은 국회 바깥 집회에서 언론노조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막 상정했고 김보협 동지 혼자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 우리도 뚫고 들어가자.” 국회 본회의장이 있는 건물 출입구는 이미 막혀 있어서 어떤 이들은 창문을 넘고 어떤 이들은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다. 본회의장 앞 중앙홀에서 기자회견을 한 사진이 다음날 한 신문에 실렸다. 그대로 증거가 돼 대부분 검찰에 불려다녔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서 수백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와이티엔 노종면은 200만원, 문화방송 박성제는 400만원이었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혼자 난동을 피우던 나는 문제의 사진에 등장하지 않아 무사했다. 생방송까지 나간 탓에 검사들의 질문 공세가 집요했으나, 기소된 동지들은 “난 모르는 사람”이라고 버텼다. 그때부터 큰 빚을 졌다. 앵커석에 앉고 마이크를 잡아야 할 노종면, 박성제가 1970, 80년대나 있을 법한 해직 언론인이 된 이후엔 더 면목이 없어졌다. 같이 총파업을 결의했으면서도 “당신들은 신문을 잘 만드는 게 제대로 파업하는 것”이라는 신문사, 사내방송을 통해 “신문 제작 필수요원을 빼곤 언론악법 저지 집회에 참석하라”고 독려하는 <한겨레>를 다닌 덕분에 난 또 혼자만 잘 살아남았다. 그날을 잊지 말자고 해마다 모여 술잔을 부딪칠 때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그들 앞에서 늘 미안했다. 그래서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내가 깨달을 날은 박성제와 노종면을 방송에서 보는 때다. 비정상의 날이 길어져 그것이 정상인 양 착각하는 자들이, 문재인 정부가 전두환처럼 방송을 장악하려고 한다고 떠드는 그 방송에서 박성제를 보고 싶다. 3천일을 넘게 바깥을 떠돌던 노종면이 만드는 ‘돌발영상’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다. 그것이 정의로운 결과다.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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