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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위문편지

등록 2017-06-28 18:40수정 2017-06-28 20:51

전우용
역사학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국군 아저씨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 ○○국민학교 ○학년 ○반 ○○○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만을 노리는 북괴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국군 아저씨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써 주시는 덕택에 저는 후방에서 안심하고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도 모두 국군 아저씨 덕분입니다. 운운.

본래 위문편지란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부모나 자식을 잃은 친지에게, 화재나 수해를 당한 친척에게, 중병에 걸려 앓아누운 지인에게, 그들의 슬픔과 억울함에 공감을 표시하고 역경을 극복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게 위문편지였다. 위로의 내용은 구체적이어야 했고, 상황에 따라 다른 극복 방안을 조언해야 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추상적 인간에게는 실질적인 위로와 도움을 줄 방도가 없다.

구체적 개인이 추상적 집단에게 위문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근대적 매스미디어 덕이었다. 1920년대에는 저명인사가 수재민 등에게 보내는 편지체 형식의 위로문이 종종 신문지면에 실렸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이 실명의 다수와 익명의 다수를 직접 연결했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전방의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썼고, 군인들은 이를 받아 읽었으며, 언론은 이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다. 해방 후 한동안 중단되었던 학생들의 위문편지 쓰기는 1949년에 부활하여 이제껏 지속되고 있다. 6·25 전쟁 중에는 특히 여자 고등학생들에게 위문편지 쓰는 ‘과외 숙제’가 집중되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국군 아저씨는 인격화한 국가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이들’을 통해 자기 실존을 증명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심어놓은 군국(軍國) 일체의 관념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적당한 생존 환경을 찾았다. 위문편지는, 국가에 감사하는 국민을 양성해온 교구이자 교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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