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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퍼부어 달라

등록 2017-07-10 18:32수정 2017-07-10 19:52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운영위원장

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지 못할 정도로 사라진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데 영정 사진이 서로 화장해주며 찍었던 친구의 증명사진이었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친구 부모님이 더 슬퍼지실까봐 장례식장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는 아이는 그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꺼억꺼억 울었다. 친구들 인생을 대신 살아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남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산다는 아이는, 자신은 지금 일곱 명 정도의 목숨을 살고 있는 거 같다며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다가 말을 꺾었다. 3살 때부터 같은 빌라 같은 동 위아래층에 살았다는 친구가 죽도록 보고 싶다는 아이는 ‘죽어서 걔를 볼 수만 있다면 지금 죽고 싶어요’ 그랬다.

지난 6개월,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아이들의 육성을 들었다. 그 말들의 행간은 빠짐없이 아득했다. 이제 21살의 성인이지만 친구들을 말하는 동안 아이들은 열일곱 소녀소년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뒷면에는 아직 꺼내지도 못한 채 숨어 있는 고통과 슬픔이 즐비하다. 희생학생의 친구와 세월호 세대들의 상처도 그중 하나다.

‘세월호 세대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다’ 프로젝트는 그 슬픔과 상처를 드러내는 긴 여정의 시작이다. 자원한 또래 세대의 ‘공감기록단’은 희생학생 친구들의 육성을 빨판처럼 들었다. 치유자 정혜신과 이웃치유자들은 그들을 먹이고 보듬고 함께 울었다. 희생학생 친구들은 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속 상처를 털어놓는다 했다. 자해를 하고 정신과 약을 먹을 만큼 힘들면서도 괜찮은 척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말은 고해성사 같았다. 가족도 아닌데 유난 떤다고 비난받은 적이 있어서 그랬다고 했다. 공감기록단은 또래의 눈높이에서 친구들의 그런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들을 정혜신과 이웃치유자들이 울타리처럼 지켰다. 액자소설처럼 중첩된 그 모든 치유의 과정이 다큐멘터리 한 편에 담겼다. 치유다큐 <친구들: 숨어 있는 슬픔>. 90분간의 영상을 먼저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희생학생 친구들과 공감기록단과 이웃치유자들이 서로를 향해 ‘고맙다’고 하는 심정을 알 거 같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자였고 그 광경을 목도하는 자신 또한 치유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희생학생의 친구 한 명은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동안 공감해주는 소리를 들었다며 ‘내가 슬퍼하는 걸 나쁘게 안 봐주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감사해요’ 그러면서 환하게 울었다. 공감기록단은 친구들을 향해 연신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 고맙다고 해줘서 고맙다,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공감기록단은 자기들이 만든 영상을 보고 친구들이 상처 받을까봐 걱정했고 그 영상을 본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상처 줄까봐 여러 고려를 하느라 공감기록단 또래 친구들이 많이 힘들었겠다고 위로했다.

아이들의 숨결 같은 육성을 듣다 보면 숨겨진 일인치를 찾아낸 화면처럼 세월호 참사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아프지만 안도하고 위로받으며 환하게 울 수도 있을 것이다. 8월부터 ‘치유공간 이웃’에서 공동체 상영을 통해 배포를 시작한다. 좋아하는 프로스트의 시 한 구절. ‘비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 세월호 세대들이 이웃치유자들을 뒷배 삼아 바람처럼 밀어붙여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땅의 시민들이 치유다큐의 ‘전파자’가 되어 비처럼 퍼부어 주시길. 셀프 치유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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