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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대학과 학문과 교수, 그리고 민교협

등록 2017-07-23 18:37수정 2017-07-23 18:58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올해는 민교협이 출범한 지 30년을 맞는 해다. 민교협은 대학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목표로 해 만든 교수 대중 조직이다. 그동안 그 두 목표를 이루려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고,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진영에서 상당한 신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0년 우리 사회 전체, 특히 대학이 신자유주의의 지배에 더욱 빠져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민교협의 활동은 기대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제는 정년퇴임한 상태이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몸담았던 대학은 내게 여전히 소중한 곳이다. 그곳은 무엇보다 안정된 일자리였다. 전두환 정권 이후 지금까지 사회 문제에 나름대로 비판적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월급이라는 튼튼한 보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적인 소득이 없을 경우 사람이 얼마나 궁색해질 수 있는지는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대학이 정말 소중한 이유는 학문을 업으로 삼는 교수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몇몇 유럽어에서는 교수를 프로페서(professor)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말을 직역하면 ‘고백자’, ‘공언자’ 정도가 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에 따르면 교수가 공언자인 것은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이런 학문, 또는 저런 학문을 하겠노라고 나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수는 그래서 종교를 믿는 사람과 닮은 점이 많다. 신자가 때로는 죽음까지 무릅쓰며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면, 교수도 명예와 목숨을 걸고 학문을 지켜내야 한다.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한국의 대학은 망했다고 봐야 한다. 학문을 제대로 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대학도 많다. 교수들더러 프로젝트 성과 낼 것만 닦달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최고 지성의 위상임을 내세우면서도 내부 민주주의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곳이 한국의 대학이다. 지난주 <한겨레> ‘세상읽기’ 칼럼에서 김누리 교수가 지적하듯이, 대학은 이제 “진리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타락했다”. 학문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 교육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공부보다는 알바노동이 더 급한 학생이 크게 늘어났고, 대학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대학도 늘었다.

올해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출범한 지 30년을 맞는 해다. 교수로 갓 임용된 1987년 여름 동료 교수들과 이 조직의 결성을 위해 경찰들을 피해서 서울의 평창동, 우이동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는 민교협 활동에 동참함으로써 교수로서의 자각을 얻게 되었다고 믿는 만큼 창립 30주년을 맞은 소회가 남다르다.

민교협은 대학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목표로 해 만든 교수 대중 조직이다. 그동안 그 두 목표를 이루려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고,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진영에서 상당한 신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0년 우리 사회 전체, 특히 대학이 신자유주의의 지배에 더욱 빠져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민교협의 활동은 기대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학 민주화를 놓고 보면 그 성과는 정말 참담하다. 이것은 개인만의 판단이 아니라 창립 30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동료 교수들 대부분이 공유한 것이기도 하다.

대학 개혁을 주된 목표로 표방한 교수조직이 생겨나 나름의 활동을 벌였어도 지금 대학이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 데에는 정규직 교수 중심의 민교협도 책임질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대학에서 교수들은 ‘을’보다는 ‘갑’에 해당한다. 대학 민주화를 표방한 우리 자신도 학내에서 ‘갑질’을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특히 학생들과 비정규직 교수들, 조교들에 대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했는지 되돌아보면, 나 자신도 부끄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을 하겠노라고 공언한 사람으로서 그런 자임에 걸맞은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스스로 물을 때도 그렇다. 정규직 교수는 대학을 학문 공동체이자 교육 공동체로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지는 않다.

민교협 회원으로서 이런 자성이 드는 것은 함께 활동한 동료 교수가 최근 대학의 학문과 교육을 관장할 교육부 수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상곤 장관은 민교협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두세 명 안에 드는 사람이다. 민교협의 결성과 초기 운영에서, 그리고 이후 정규직 교수 운동에서 그만큼 큰 역할을 했던 이도 드물다. 그런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되었으니 분명 반가운 일이나 나는 그가 한국 대학은 망했다는 진단을 잘 새겨듣기를 바란다. 그런 진단의 심각성을 잊지 않아야만 그동안 대학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막을 방안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민교협 회원 출신으로 그가 우리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데 기여해줄 것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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