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디터 증세 논쟁의 뚜껑이 열렸다. 아니, 열리려다 서둘러 닫은 느낌이다. 당·정·청이 21일 증세 대상을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용 5개년 계획’은 국정운영의 방향은 잘 잡았으나 실행에 소요되는 재원 178조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대책은 부실했다. 국정위는 증세 없이 세입 자연증가분과 재정지출 절감(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관건은 5년 동안 세수의 자연증가분 60.5조원과 지출 절감 60.2조원의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에 모아진다. 최근 몇년간 추세를 보면 세수의 자연증가분은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제성장세가 현 수준 이상으로 지속된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재원 마련 계획에는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정위는 복지지출의 누수를 방지하거나 재량지출에서 10%를 절감하겠다고 했다. 재량지출은 정부의 재량에 따라 지출 규모를 결정하는 예산이지만 각각의 사업에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어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예컨대, 지방 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 예산의 경우 축소하기도 어렵거니와, 연기를 하게 되면 오히려 나중에 예산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속된 말로 예산 ‘돌려막기’를 하려다 더 불어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도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역대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은 각각 성장과 분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달랐다. 그러나 재원 마련 대책은 비슷했다.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출 구조조정, 지하경제 양성화 등이 단골 메뉴였다. 누구도 세금 인상이라는 민감한 이슈에 정면으로 부딪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10월. 정부는 국가 미래전략인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당시 재원 대책은 ‘2010년까지 지출 구조조정과 조세감면 축소 등으로 증세 없이 조달 가능하고, 2011년 이후에는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재원 대책은 여기에 나아간 게 별로 없다. ‘2017년에 국민 의견을 토대로 조세·재정을 포괄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고, 2018년에 개혁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국회에 보고한다.’(19일 국정위 발표 내용) 여당 대표와 국무위원 몇명이 여기에 문제제기를 한 건 다행스럽다. 집권세력 안에서 이렇게 증세 논의를 공론화한 것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하지만 문제제기 하루 만에 내린 결론은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도전과제들에 대응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부과해 늘릴 세수는 고작 연간 3조8천억원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담 계층이 전체의 0.1%에도 못 미친다. 이번 논쟁을 기회로 삼아 집권 5년간의 포괄적 증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중부담·중복지’로 가려면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특히, 소득세의 경우 근로소득자의 거의 절반가량이 한푼도 내지 않는다. 6천만~7천만원 수준의 소득자도 면세자에 속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다 누진성도 약하다. 세금을 부담이라고만 여겨서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은 그 세금이 국민들의 복지로 돌아오고, 성장에도 밑거름이 된다. 그 ‘효능’을 체감할 수 있게 해야 선순환이 이뤄진다. 우리나라의 실제 세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만큼 소득이 적은 사람은 적게,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담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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