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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고향세’니까 / 권영란

등록 2017-07-26 18:20수정 2017-07-26 20:34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대표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는 ‘50리 벚꽃길’이 있다. 봄이면 주민들은 벚꽃축제를 열고 조용했던 산골은 제법 사람 사는 것처럼 시끌시끌해진다. 30년 전 함양 출신 재일교포가 기증한 벚나무 1000그루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보태어 심은 덕분이다. 정부가 ‘고향사랑 기부제법(가칭)’을 실시하겠다며 그리는 장밋빛 그림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지방재정 보완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고향사랑 기부제법 제정’이 포함됐다.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문재인 후보는 고향사랑 기부제(줄여 ‘고향세’)를 언급하며 이미 구상을 얘기한 바 있다. 얼핏 ‘참 한국적인 제도’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서울에 자리잡은 자식에게 허리 구부정한 부모가 찾아와 ‘니 세이(형)가 저리 에럽고로 살고 있는데… 고향 세이가 잘돼야 니도 다 잘되는 거제’라고 호소하는 ‘우리 식’이라 여겼다. 하지만 고향세는 이미 일본에서 시행, 정착한 제도였다.

정부가 고향세를 앞세울 만큼 지방정부 재정이 참담하다. 현재 서울시, 경기도와 광역시를 빼면 지방재정 자립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방재정365’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인구 990만명인 서울의 재정자립도는 83.79%로 가장 높고, 인구 1300만명 가까이 되는 경기도가 74.17%로 그다음을 차지한다. 경남은 50%가 안 된다. 경남지역을 살펴보면 2017년 기준으로 산청군, 합천군, 의령군, 거창군 등은 재정자립도가 10%대이다. 전남지역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신안군, 강진군, 구례군 등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실제 주민들은 때때로 들려오는 시·군 통합이니 존폐 위기니 하는 말에 서로 예민해진다.

행정안전부는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고 도농 교류를 위해 이미 ‘고향에 희망을, 지역에 활력을…’이라는 표제로 고향희망심기사업을 실시해 왔다. 전국 51개 지방자치단체가 시범사업에 참여했고, 지난해 말 경남 산청군을 포함해 전국 10개 단체가 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산청군의 경우는 ‘출향인사 1인 1구좌 갖기 운동’을 통해 전국의 산청군 향우들이 동참하여 2017년 현재까지 900명이 넘는 소액기부자를 모집했다. 고향희망심기사업은 기부자에게 어떤 대가나 혜택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이 점에서 고향세는 다르다. 기부자가 고향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할 경우 세액 공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기부금 모집·활용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아직 세부적인 지침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향세 활성화를 위해 기부자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부자가 비영리단체에다 후원금을 내고 세액공제 받듯이 말이다. 혹은 정치 후원금 10만원 세액공제 방식 등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국세의 지방 분산 효과도 있고 기부자 참여가 높을 것도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보탰으면 좋겠다. 기부받은 돈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투명하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여기에 더해 그것을 기부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탈탈 털어 공개할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내가 낸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면 단순히 일회적 기부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별 총 기부액과 집행 내역을 기부자에게 매년 공개하면, 좀더 많은 지지와 신뢰를 받으며 확산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실제 고향은 서울이지만 산청군에 기부를 하면 그 지역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낸 기부금이 그 지역 학생들 장학금이 되고 마을 다리와 주민 쉼터가 되고 주거지원사업으로 쓰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무척 반가울 것도 같다. 마치 고향 편지처럼. 휴가철이면 찾아가게도 될 것 같다. 이러다 자연스럽게 소통과 분배가 동시에 이뤄질 것도 같다. 나도 잠시 장밋빛 그림을 그렸다. ‘고향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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