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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여전히 8·15 특사를 기다리며 / 정지영

등록 2017-07-27 18:33수정 2017-07-27 20:33

정지영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김홍열 위원장 부인

나는 양심수의 아내다. 경기도 양주의 집에서 출발해서 서울 광화문까지는 꼬박 2시간이 걸린다. 지난 13일부터 광화문광장에 나와서 청와대를 향해 걷고 있다. ‘양심수 없는 나라로 ? 동행’이란 이름이다.

첫날, 청와대 방향으로 난 청운동사무소 앞길은 거짓말처럼 열려 있었다. ‘정말 세상이 변했구나.’ 그런데 다시 백여 미터를 좀 더 갔을까. 경찰이 몇 겹으로 막았다. 행진에 함께하는 청년들이 입고 있는 수의(수감자들이 입는 옷)를 벗으라고 했다. 다시 청와대 분수대를 향하는 그 짧은 길 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가 입은 수의를 벗기려 하지 말고 양심수가 입고 있는 수의를 벗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곁에서 꼬옥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신 분은 팔순의 권오헌 선생님(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다. 선생님 팔뚝을 만져 보니 너무 가늘었다. 한 달 전에 갑자기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다. 당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정말 얼마 없는데 폭염 아래 내 곁에서 함께 걸으신다. 선생님을 보며 ‘고귀함’이란 말이 떠올랐다.

지난 월요일에는 민가협 어머니들이 오셨다. 이날도 폭염과의 동행이다. 모두 칠순이 넘은 분들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두 시간을 꼬박 함께 걸었다. 젊은 시절 외쳤던 ‘양심수 석방하라’, 삼십년 세월이 흘러 다시 청와대 앞에 와서 외치셨다. 자기 아들이 청와대에 있는데 그 앞에서 와서 양심수 석방을 외치시는 분도 있다. 보통 용기로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아들은 청와대에 들어가 있고, 또 어떤 아들은 감옥에 가 있고. 내 품에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양쪽 아들을 다 품는 어머니의 마음 아닐까.

다음날 아침, 광화문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휴대폰 뉴스알림이 떴다. ‘8·15 특사 없다.’ 두려웠다. 그걸 다 보면 내 마음이 어떨지 아니까. 하지만 클릭해서 읽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 이게 무슨 말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멍’해졌다. 지하철이 광화문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멀리멀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큰방에 있는데 거실에서 아들이 친구랑 하는 전화 대화가 들렸다. “우리 아빠, 8·15에 못 나올 수도 있대. 진짜일까? 못 나오면 어떡하지?” 나는 모른 척했다. 그리고 며칠간 단 한 시간을 제대로 못 잤다. 출근해 일을 하면서도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엊그제 누군가 물었다. ‘신랑이 8·15에 나올 거로 기대하고 있었니?’ 나온다, 안 나온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의 반응을 보니까 ‘정말 난 기대하고 있었던 거구나’ 싶다. 실은 정말로 사무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머리’는 못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이 불쌍해서 남편을 꺼내준다거나 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대신에 사람들의 양심에 물어보고 싶다. 말 몇 마디 한 거밖에 없는 남편(‘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김홍열씨)이 정말 4년째 감옥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아가 다른 양심수들이 이대로 감옥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포털 뉴스 댓글에서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많이 기다렸다. ‘이미’ 차고도 넘칠 만큼 아팠다. ‘아직’과 ‘이미’ 사이에 긴 강이 있는 것 같다. 그 강에 내가 빠져 죽을 것 같다. 숨을 못 쉴 거 같다. 촛불을 함께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강의 간격을 조금만 좁혀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난 청와대로 계속 걸어갈 생각이다. 그 바람으로 뭐라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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