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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곡의 똑똑똑] ‘쿠세’

등록 2017-07-30 20:32수정 2017-07-30 20:38

김곡
영화감독

일본말이다. 특히 음악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고치기 힘든 나쁜 버릇’을 뜻한다. 어떤 보컬리스트는 한음끌기만 나오면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쿠세’가 있다. 쿠세는 장르를 넘어갈 때 더욱 두드러진다. 예컨대 트로트 가수는 자기도 모르게 팝에도 꺾기 창법을 섞을 것이며, 반대로 아르앤비 가수는 트로트에도 소몰이를 할 것이다. 쿠세는 연기에선 ‘쪼’라고도 한다. 드라마 쪼가 존재하고, 연극 쪼가 존재한다. 쿠세는 연출에도 있다. 액션전문 영화감독은 코미디를 연출할 때도 샷을 쪼개야만 직성이 풀린다. 물론 그의 이성은 “쪼개지 않은 풀샷으로 상황을 보여줘야 더 웃긴다”며 끊임없이 되뇔 것이나, 그의 메가폰과 카메라는 이미 샷을 쪼개고 있다. 아니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성과 의식이 하지 말라며 설득해봤자 소용없다. 쿠세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존재하는, 그의 무의식적인 반응체계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생리학에서 쓰는 ‘리플렉스’(reflex)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쿠세는 자동반사다.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몸은 어김없이 그 형태로 ‘반응한다’. 쿠세는 거의 본능이고 충동이다. 굼벵이는 밟히면 꿈틀하고, 반대로 전갈은 자신을 태우고 강을 건너던 개구리에게도 독침을 쏜다. 쿠세는 지식, 정보, 언어, 도덕이 아니라 몸짓, 자극, 감각, 태도로 짜인 자동회로다. 그래서 쿠세는 긴급한 상황에서 더 잘 튀어나온다. 이것이 선현들이 결혼 전에 약혼자와 함께 배낭여행을 가보라고 충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식의 콩깍지에 가려져 있던 상대의 쿠세는 극한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아무리 곱게 자라고 잘 배운 약혼자라도 예외는 없다. 쿠세는 자동반사 회로다.

쿠세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그것이 사회적으로 직조되었단 사실에 있다. 쿠세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본능이므로, 사회적 본능이다(사회학자들은 ‘아비투스’(Habitus)라고도 한다). 이것은 생득적 본능보다 더 무섭다. 그가 살았던 시간을 따라 더더욱 단단해졌단 뜻이기 때문이다. 고로 쿠세는 당신이 몸담았던 사회를 증거한다. 당신이 살아온 환경에 의해 새겨지고, 당신이 살지 않았던 환경에서도 튀어나오는 게 쿠세다. 쿠세는 문신이다. 몸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타투머신은 언제나 사회다. 사회만이 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쿠세의 배양환경을 어른들은 ‘가정교육’이라고 하셨지만,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교육’이다. 요새 정치인들 사이에서 노룩패스, 장화 신겨주기, 레밍 망언 등등이 유행인데, 이 또한 긴급한 상황에서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그들만의 쿠세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뇌고, 아무리 고매한 도덕관념과 명분으로 억누르려고 해도 소용없다. 그대들의 의식은 어쩔지 몰라도, 발은 이미 장화를 신겨 달라고 뻗고 있고, 혀는 이미 레밍을 뱉고 있다. 쿠세는 그대들 몸에 배어 있는, 즉 특정 사회로부터 교육되어 설계된, 사회에 대한 그대들의 무의식적 반응이고 육체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고로 쿠세를 피할 길은 딱 두 가지다. 쿠세가 새겨진 당신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을 할 수 있는 성인군자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쿠세를 새기는 환경을 피해 살거나. 대부분 전자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후자로 간다. 문제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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