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논설위원
커다란 변화가 진행중이다. 최저임금 큰 폭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탈원전 등 눈에 띄는 것들만 꼽아도 사회를 뿌리부터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예상했던 대로 까탈이 극성스럽고 훼방이 집요하다. 조금만 틈이 보이면 잽싸게 파고들어 딴죽을 건다.
되치기의 선봉은 역시 보수언론이다. 연일 포퓰리즘 낙인을 찍어대며 반대론을 증폭한다. 귀담을 내용도 더러 있지만 부풀리거나 억지 부려 우기는 내용이 많다. 정권을 얼마나 얕잡아봤기에 초장부터 나라를 결딴내기라도 한 것처럼 닦달하고 난타하는지 모르겠다.
‘촛불’의 폭발적인 변화 요구를 엔진으로 삼아 출범한 정권이다. ‘재조산하’(再造山河), 과거와 다른 나라를 만들겠노라고 다짐한 바도 있다. 과감한 발상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이치다. 보수정권이 해오던 그대로 정책을 편다면 정권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트집을 잡더라도 이 점을 착각해선 안 된다.
예를 들자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이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라며 “노동 유연화를 놔버린 게 제일 아픈 곳”이라고 자탄했다. 참여정부의 핵심부에 있던 문 대통령도 누구보다 이 점을 아프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부채의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8일 오후 (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시내 숙소인 하얏트 호텔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로 눈을 돌려보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문 대통령보다 나흘 늦게 취임했다. 마크롱이 ‘쌍둥이 승리’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높은 지지율 속에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것도 공통점이다. 취임 3개월을 앞둔 요즘 두 사람 처지는 너무나 다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70%대 후반, 여전히 굳건하다. 60%를 웃돌던 마크롱 지지율은 40%대로 주저앉았다.
무엇이 두 사람의 초반 운세를 갈랐을까. 두 사람은 정확히 반대 방향을 향해 운전대를 잡고 있다. 마크롱은 노동 유연화를 향해 내달리는 중이다. 노조 권한을 축소했고 다달이 지급하는 주택보조금도 5유로씩 삭감했다. ‘부자감세’까지 꺼내 130만유로(약 17억원) 이상 자산 보유자의 부유세 세율을 절반 수준으로 화끈하게 깎았다. 문 대통령은 노동 친화적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는 중이다. 초고소득층 세율 인상은 ‘부자증세’에 가깝다. 마크롱이 기업과 부유층에 손을 내밀며 노동계·저소득층과 점점 멀어지는 쪽이라면 문 대통령은 그 반대쪽이다. 물론, 두 나라 형편이 크게 다르다. 프랑스는 재정적자가 발등의 불이지만 우리는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다.
상반된 운전 스타일도 둘의 지지율 격차를 부른 요인이다. 마크롱은 국방, 노동, 세제 개혁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속도위반도 주저하지 않는다. ‘주피터 스타일’, ‘파라오 리더십’이란 불명예스러운 딱지까지 붙었다. 권위적이고 오만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젊어도 운전 실력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운전 미숙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불렀다. 국방예산 삭감을 다그치다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의 ‘항명’을 부른 게 대표적 사례다. 문 대통령이 ‘탈권위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확보했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높은 지지율의 중요한 동력이다.
문 대통령은 “새 시대의 첫차가 제가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하곤 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스스로 부여한 소임을 잊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힘 있고 지지율이 높아야 뜻하는 바,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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