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영국의 2차대전 영웅 몽고메리는 장군치고는 문약하고 구부정한 외양을 지녔다.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별명은 ‘스파르타 장군’이었다. 금욕 등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했다. 1942년 여름, 처칠은 독일의 로멜이 이끄는 아프리카군단한테 이집트마저 내줄 위기에 처하자 몽고메리를 급파한다. 전선 시찰에 나선 처칠은 몽고메리의 고집에 혀를 내두르는 경험을 한다. 뉴질랜드 사단장이 막사 식당에 준비한 굴수프를 앞에 둔 상황에서였다. 때마침 도착한 몽고메리도 사막에서 별미를 즐길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총리이자 최고사령관과의 오찬을 거부한다. 부하한테는 접대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깰 수 없다며 차 안에서 샌드위치로 때운 것이다. “강자는 엄격하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마르지 않는 얘깃거리를 챙겨 제대한다. 딱한 것은 몽고메리의 에피소드처럼 감동적이기보다는 부조리가 빚어낸 블랙코미디가 주류라는 점이다. 박찬주 장군 사건을 보면서 일부에서는 ‘뭐가 새삼스럽다고…’ 하는 식의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새삼스럽지 않기에 오히려 심각하다. 만연하고 구조적인 문제는 언제까지나 관행이라는 참호에 숨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떤 계기로 고개를 드는 순간 집중사격에 노출된다. 장군의 호사는 임진왜란 때 명의 수군 도독 진린이 전속 요리사 일곱 명을 대동하고 왔다는 일화까지 떠오르게 한다. 이제 정부와 사회 차원에서 ‘갑질 근절’이라는 처방전이 발행됐다. 사병(士兵)의 사병(私兵)화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두 가지 교훈으로 볼 때 ‘갑질’, ‘테니스병’, ‘과외병’ 같은 상징적 표현이나 센세이셔널한 사례에 집중하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그 교훈은 첫째, 군대의 반인권적 상황 개선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땜질과 용두사미에 그친다는 점이다. 공분을 자아내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병영 문화의 철저한 개혁이 약속됐지만 결과는 미약했다. 둘째, 탁류가 풀린 곳은 맨 윗물임이 확인됐다. 가장 많은 별을 단 사람이 반인권의 ‘모범’을 보이고 있었다. 상부구조에 속하는 문화는 하부구조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하부구조를 어떻게 고칠지 검토해야 한다. 한국군 의무복무제의 특징은 자유의 극단적 제약 및 노예노동과 다를 바 없는 급부다. 동원 태세를 흩트리지 않고도 자유를 확대하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도 확장해야 부조리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억눌려만 있다 보니 주기적으로 폭발한다. 대군의 유지 부담을 고려하더라도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를 추구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병사들의 초과근무를 왜 제대로 보상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논란의 소재다. 지금 병사들의 아버지 세대는 장군의 몇백분의 1 수준의 비용으로 ‘유지’됐다. 사람의 사회적 가치는 노동가치로 측정된다. 현실에서는 실제로 어떤 처우를 받는지가 중요하다. 제도가 무제한적 공급을 약속하는, 노동가치를 심각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협상력 제로의 대상들은 존중받기가 쉽지 않다. 싸니까 막 부린다. ‘최저임금만 받고 청춘의 일부를 국가에 바쳤다’고 해도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다.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군국주의적 태도다. 얼마 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22년까지 병장 월급을 최저임금의 50%로 맞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떤 신문 기사는 이 소식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언급을 달았다. 나도 그랬으니 타인의 고통도 어느 정도 당연하다는 식의 인식은 얼마나 저급한가.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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