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트럼프와의 ‘거래의 기술’ / 박현

등록 2017-08-20 20:18수정 2017-08-20 20:25

박현
경제 에디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성취물의 하나로 꼽는 게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책이다. 40살 때 지은 이 책에 대해 그는 지금도 <성서>에 이어 두번째로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 그의 스타일을 가늠케 하는 몇몇 대목이 눈에 띄었다.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호텔 체인인 홀리데이인 주식을 대량 매집하면서 이렇게 쓴 대목도 있다. “이제 홀리데이인은 부실 경영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회사를 다른 사람 손에 넘기지 않으려면 뭔가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나는 그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며 내 거래를 즐길 뿐이다.”

거래는 그에게 일종의 게임이다. 이제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된 그에게 게임의 대상은 부동산 거래에서 다른 나라와의 무역 거래로 바뀌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도 그중 하나다.

그가 이 협정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근거는 미국이 큰 폭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은 위대한 동맹이자 동반자이며, 미국은 한-미 동맹을 위해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며 “다만 막대한 대한국 무역적자를 시정하고 공정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핵 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 통화였음에도 그는 대화 후반부에 이 이슈를 꺼냈다. 거의 ‘본능적으로’ 비즈니스맨의 끼가 발동한 셈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안보에서 ‘희생’하고 있으니 한국이 경제에서 양보하라는 것이다.

22일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첫 회의를 앞두고 정부에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첫째는 안보 이슈와 분리 대응하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국방비 상당 부분이 미국 첨단무기 구입에 쓰일 것이어서 대한 무역적자 규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역적자를 첨단무기 수입분으로 해소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잖아도 우리는 이미 미국의 첨단무기를 과도할 만큼 많이 구매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우리가 상품 부문에서는 흑자를 보지만 서비스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고, 투자액도 훨씬 많다는 점 등 경제적 논거들로 대응해야 한다.

둘째, 트럼프 특유의 ‘엄포’ 전략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그가 정책을 추진하는 수순을 보면, 먼저 극단적인 언사와 주장을 통해 상대방을 위협함으로써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끔찍하다”고 지칭하면서 재협상을 압박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매우 수세적이었다.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에 나서거나, 개별 기업의 대미 투자를 늘리는 등 ‘선물’을 안기는 데 급급했다. 우리도 폐기를 불사할 수 있다는 각오로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셋째, 우리 입장에서 협정을 재평가하고 정책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한다. 통상당국은 이번 협상 목표로 ‘확대 이익균형’을 설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교역 규모를 더 늘려 ‘확대된 새로운 이익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위험하다. 그러잖아도 이 협정은 세계적으로 개방도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 안의 약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촉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공정책 추진을 제약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와 같은 독소조항을 손질하고, 지식재산권 보호 완화를 포함한 서비스 및 농산물 부문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