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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살충제 친환경 계란, 왜 나왔나 / 안종주

등록 2017-08-21 20:19수정 2017-08-21 20:30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살충제 계란 파동이 몰고 온 폐해는 엄청나다. 그 가운데 정부의 안전한 식품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식품 안전관리 가운데서도 친환경 농수축산물 인증과 해썹(HACCP), 즉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제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의 골이 깊어진 것이 가장 뼈아프다.

먼저 친환경 농수축산물 인증제도부터 따져보자. 현재 농림축산식품부는 항생제, 합성 항균제, 호르몬제를 첨가하지 않은 일반사료를 가축한테 주면서 인증기준을 지켜 생산한 축산물에 ‘무항생제축산물’ 인증을 해주고 있다. 또 유기농산물을 사료로 가축을 기르면 ‘유기축산물’ 인증마크를 부여한다. 농산물에 대해서도 두 개의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에는 ‘유기농산물’ 인증,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화학비료를 권장 사용량의 3분의 1만 사용해 재배한 농산물에는 ‘무농약농산물’ 인증을 해준다. 해양수산부도 수산물에 친환경 인증제도를 도입해 △유기수산물 △무항생제 수산물 △활성처리제 비사용 수산물 등으로 나눠 마크를 달아주고 있다.

하지만 살충제 계란 파동을 겪으면서 친환경 축산물 인증제도가 무늬만 친환경이란 것이 드러났다.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친환경 인증을 내주었고, 그 뒤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인증마크를 내주지만 실은 정부의 위탁을 받은, 64곳이나 되는 민간인증기관이 친환경 축산 인증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 산란계 농장 가운데 절반을 훨씬 넘는 곳이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이번에 살충제 사용으로 문제가 된 곳 가운데 다수도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으로 나타났다. 살충제 친환경 산란계 농장들이 친환경이란 예쁜 얼굴에 침을 내뱉은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일부 지자체가 친환경 인증 농장에서 살충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이들 농장에 진드기 퇴치용 살충제를 국민 세금으로 구입해 무료 보급까지 한 사실이다. 정말 말문이 막힌다.

문제는 친환경 인증제도 운영 부실이 계란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친환경 소·돼지·닭고기와 농산물, 수산물에까지 불똥이 튀어 친환경 인증제도뿐만 아니라 친환경·생태농업 자체가 소비자들의 불신을 살 위기에 놓여 있다. 농수축산물은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등 공산품과 달리 눈·코·입으로 친환경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마크를 믿고 사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잠깐은 친환경·생태농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강한 불신을 촉발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 그 중요성을 더욱 각인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도 닭을 방목하고 잠잘 때는 상대적으로 쾌적한 닭장에서 잠자게 하면서 키운 닭이 낳은 계란에서는 일체의 살충제 성분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진짜 친환경·생태 축산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 친환경 인증제도를 강화해 지금처럼 무늬만 친환경인 농장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친환경·생태 농수축산업을 하는 곳에 대해서만 이를 인정한다면 국민은 조금 더 비싼 값을 주고라도 이들 농수축산물을 소비할 것이라 본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친환경·생태 농업은 지금 당장 위기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실은 기회일 수도 있다. 위기냐 기회냐는 농수축산인과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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