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자 “죄송합니다, 저희가 졌습니다.”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심문회의가 끝나고 정승균 노무사로부터 패소를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답장은 보냈지만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불과 두 달 전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고,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의 지방노동위원회 초심 결정 유지율이 75%에 달해 내심 기대가 컸다. 무엇보다 14년 만에 복직해 현장 노동에 막 적응한 터였다. 그런데 동료들에게 또다시 해고될 위기에 놓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잠시 과거로 가야 한다. 2000년 20대 후반의 창창한 나이에 나는 그랜저와 쏘나타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내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경영진은 당시 자동화기계 등 최신 설비가 갖춰진 아산공장을 ‘꿈의 공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에게는 지옥 같은 공장이었다.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쥐꼬리만한 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에 신음했다. 급기야 2003년 월차를 쓰려던 어느 하청 노동자가 하청업체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고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잘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현대자동차 아산, 울산, 전주공장에 차례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이어 2004년 노동부 진정을 통해 현대차 불법파견의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노조 결성 과정에서 사무장이던 나는 곧바로 해고되었다. 하지만 불법파견 철폐 및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마침내 2010년 대법원은 최병승 판결을 통해 현대차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2015년 아산공장 불법파견 판결까지 사법부는 현대차만이 아니라 제조업에 만연한 사내하청 사용 관행에 연이어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재까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원은 나에 대해 이미 2002년 8월부터 정규직이라고 판결했지만 회사는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므로 최병승, 오지환에게는 단체협약을 적용할 수 없다며, 신입사원과 동일한 입사 절차를 강요했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다 결국 지난해 12월 해고당했다. 다행히 지난 4월 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가 신입 채용과 같은 입사 절차를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첫 출근길에 아내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꿈에 그리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노위는 이러한 지노위 판정을 취소했다. 오는 9월 초 중노위 판정문이 도착하면 회사는 다시 해고하겠다고 한다. 해고는 살인이라는데 나는 마치 시한부 환자처럼 세번째 해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불법파견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현대차만 하더라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소송 포기를 종용하며 이들 5700여명을 신규 채용했다. 불법파견을 무마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대법원 선고를 앞둔 근로자 지위확인 집단소송 사건에 대해 반장협의회를 내세워서 사내 하도급을 합법화해달라고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노조 결성을 가로막는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할 권리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다 해고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차가운 길거리에 내몰려 싸우고 있다.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은 애초부터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약속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정규직 제도야말로 적폐 청산 대상 1호이며, 노동 존중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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