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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협박의 계보 / 이본영

등록 2017-09-05 18:13수정 2017-09-05 21:57

이본영
국제뉴스팀장

전제적 권력자 입장에서 당연히 고개를 숙여야 할 자가 도전하면 참기 어렵다. 소련의 스탈린과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의 관계가 그랬다. 1949년, 티토는 스탈린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객은 그만 보내시오. 다섯이나 붙잡았는데 어떤 자는 폭탄, 다른 자는 소총을 들었더이다. 계속 그런다면 나도 한 명 보내겠소. 나로선 두 번 보낼 일은 없을 것이오.” 편지는 1953년 스탈린 사망 직후 그의 책상에서 발견됐다. 뒷부분 문구를 기회 있을 때 써먹으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대결도 협박의 ‘향연’이다. 한 사람은 초강대국 지도자이고 다른 사람은 깡으로 무장한 소국 지도자인 점이 스탈린과 티토의 대결을 닮았다. 티토는 빨치산 사령관 출신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빨치산 대장의 손자다. 김 위원장도 ‘참수 작전’의 위협을 받는다.

불행히도 비유는 여기서 그친다. 핵무기의 시대에 총과 폭탄은 너무 소박하며, 개인 목숨이 문제가 아니다. 노랫말마따나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을 내놓은 시간은 일본 시간으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8월9일(1945년)이다. 트루먼은 사흘 전 히로시마를 먼저 때리고 ‘폐허의 비’(rain of ruin)를 예고했다. 경고가 나온 날짜, 앞 글자를 맞춰 흥미를 돋우는 영어권 문화를 감안하면 역사적 공명을 일으키는 표현이라고 만족해하며 던진 말 같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해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절멸”이란 단어를 꺼냈다. 남의 독립기념일에 “선물 보따리”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는 쪽은 어떤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나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미국의 오펜하이머와 소련의 사하로프가 숙청을 감수하며 결사반대한 게 수소폭탄이다. 그걸 앞에 놓고 희희낙락하다니….

협박의 지평이 무한대로 넓어진 것은 스탈린이 협박 편지를 받은 그해에 소련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부터다. 가공할 파괴력에다 허세가 협박에 상승기류를 더해줬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핵무기도 없던 중국의 마오쩌둥이 모든 허세를 누르는 허세를 부렸다. 1957년 김일성도 참석한 모스크바 세계 공산당-노동당 대표 회의에서 “난 핵전쟁이 두렵지 않다. 중국 인구가 6억인데 절반이 죽어도 3억이 남는다. 뭐, 어떤가”라고 큰소리쳤다. 체코 서기장은 “우린 1200만밖에 안 되는데 어쩌란 거냐”고 투덜댔다.

협박은 ‘나 좀 말려달라’는 호소일 수 있다. 프랑스 전략연구재단의 브뤼노 테르트레 부소장은 <워싱턴 쿼털리> 기고에서 불행한 일본인들이 희생당한 이후의 핵전쟁 위기 37건을 분석했다.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진지하게 고려한 때는 1950년대 한국전쟁과 대만해협 위기,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정도라며 “강력한 불사용 전통”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37분의 0이 38분의 1로 될 수도 있는 상황, 그 확률 변화가 한반도에서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악몽이 우리를 짓누른다.

파국의 조건이 무르익으면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은 지도자의 선택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트럼프 대통령한테는 어떻게 오른 최고의 자리인데 희대의 폭군(<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이미 그를 로마의 유명한 폭군에 빗대 ‘칼리굴라 대통령’이라고 칭했다)으로 기록될 수는 없잖으냐고 충고해주고 싶다. 김 위원장한테는 소련의 흐루쇼프가 미국과 미사일 위기를 끝내는 타협을 한 뒤 카스트로한테 보낸 편지 구절을 소개한다. “우리가 죽고 싶어서 제국주의와 싸우는 건 아니잖소.”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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