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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사라져가는 고목나무 문화재들 / 박상진

등록 2017-09-11 18:15수정 2017-11-20 21:04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위원

우리의 전통 시골 마을 입구에는 어김없이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버티고 있다. 언제 찾아가도 넉넉한 품을 펼쳐 정겹게 맞아준다. 짧게는 수백년 길게는 천년을 넘겨 변함없이 마을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고마운 나무다. 이런 고목나무 중 일부는 보호수란 이름으로 나라가 직접 지켜주고 있다. 작년 말 기준 보호수는 느티나무, 소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1만3671그루이다.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은 고목나무도 많으므로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고목나무는 3만~4만그루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고목나무들은 단순히 오래 산 ‘나무 노인’만은 아니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서려 있다. 위로는 임금님에서 유명한 관리, 선비, 장군은 물론 이름 없는 백성들의 애달픈 일상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사연을 고스란히 품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보고다.

흔히 문화재라면 건물이나 탑, 불상 등만 떠올린다. 그러나 고목나무도 엄연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다. 다른 문화재는 훼손되면 복원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고목나무 문화재는 죽으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전체 보호수 중 400여그루만이 천연기념물과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 문화재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문화재다. 나머지 보호수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문화재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 값어치로는 지정문화재 못지않은 고목나무들이 수두룩하다.

보호수의 관리 실태는 어떤가? 산림청은 일찌감치 보호수의 지정관리권을 시군에 넘겨버렸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해당 시군에서는 보호를 위한 조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민의 쉼터로서 편의시설 설치에 여념이 없다. 나무 아래에 돌 축대를 쌓아 흙을 채우고 시멘트 포장까지 하여 운동기구나 의자를 가져다놓아 간이 공원을 만든다. 땅속에서도 숨을 쉬어야 하는 나무뿌리의 숨통을 끊어놓는 셈이 된다. 이뿐만 아니다.

고목나무 줄기의 일부가 썩어서 큰 구멍이 생기면 폴리에틸렌 수지로 막아버리는 외과수술이란 이름의 처치도 문제가 많다. 오히려 고목나무 속의 자연 통풍을 어렵게 하여 생명을 단축할 뿐이다. 사람에게 노인전문병원이 있듯이 고목나무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산림청 산하 유일한 연구기관인 산림과학원조차 손을 놓고 있다. 고목나무는 죽는 데만 짧게는 3~4년, 길게는 20년이 걸리니 관리 부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모두 사후 약방문이 된다.

보호수를 일괄 관리하고 돌보는 일은 특성상 산림청 소관이어야 맞다.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고목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군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산림청이 직접 나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국토의 64%나 되는 산을 모두 챙겨야 하는 산림청으로서는 보호수 관리 문제가 지극히 하찮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살아있는 고목나무 문화재를 지키는 것도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시급하고 중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실태 파악이다. 시군과 산림청의 행정 라인을 가동하면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도 보호수 전체의 실태조사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현황 파악이 우선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전국 고목나무들의 ‘제발 나 좀 살려 달라’는 외침이 하루라도 빨리 관계자들에게 크게 들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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