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자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종교의 교권역, 즉 종교가 권위로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을 존중한다. 고생물학자 굴드는 종교와 과학의 교권역이 중첩되지 않으며, 두 분야는 다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원리는 큰 틀에서 옳지만, 세상사 대부분은 어차피 정치다. 어떤 과학자는 종교 무용론을 주장하고, 어떤 종교인은 사이비 이론을 과학이라 우긴다. 과학과 종교는 쉴 새 없이 서로의 영역을 노려왔다. 굴드의 평화적 해법은 순진하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엔 별 관심이 없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문제는 중요하다고 본다. 이 둘을 구획하는 문제는 과학철학의 중요한 쟁점이다. 논리실증주의는 검증 가능성으로, 포퍼는 반증 가능성으로, 라우든은 구획문제 자체를 사이비 문제로, 그리고 피글리우치 같은 과학자/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을 근거로 이 두 영역을 구획하려 한다. 철학의 지적 욕구 때문에 이 문제가 중요한 건 아니다. 철학자 한상진은 “과학 문명에 기초한 오늘날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적 삶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정치/사회/문화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사이비 과학을 과학으로부터 구획해내야만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자. 아이의 생명을 비과학적 진단이나 치료법에 맡길 수 있는가? 공공 의료보험에 동종요법, 치유 기도를 포함해도 좋은가? 자동차보험에 무당의 부적 비용을 포함하자는 주장은? 법정에 점쟁이의 예언을 증거로 제출하면 어떤가? 건물 증축 허가에 수맥론자의 사전 조사를 포함한다면? 영구기관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이비 과학자에게 몇억 정도의 연구비야 좀 주면 어떤가? 우리 사회의 상식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막아낼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마지막 예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현실은 좀 다를 것 같은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안아키’라는 단체는 예방접종을 거부한다. 자기 자녀의 백신과 병원치료를 거부하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보균자가 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믿는 과학기술자가 과학기술 관련 투자를 집행하는 부서의 장관이 되는 건 어떤가. 그의 도덕성을 믿고 합리적 의사판단이 불가능한 인사에게 공직을 맡기겠는가? 그럼 국가 지도자가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게 속아 기업을 겁박하고 국민의 세금을 도용하고 국정을 농단한 사건은 어떤가. 이 모든 게 별로 심각하지 않은 문제인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무시하고 지났던 그 모든 비정상적인 영역이 이제 권력이 되어 사생활과 공공의 경계를 넘고 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과학의 성지나 다름없는 카이스트에 본부를 두고 매년 수천명이 참가하는 학술대회를 연다. 이 단체 회원인 장순흥이 박근혜 정부의 교육과학인수위원장이 되었고, 거기서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의 정부기관이 등장했으며, 교진추라는 단체는 교과서에서 시조새를 삭제하자는 청원에 성공할 뻔했고, 생명과학 연구비를 총괄하는 연구재단의 생명과학단장에 김준 창조과학학술원장이 버젓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제 창조과학자 박성진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되려 한다. 개인적 신앙으로서의 창조과학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타인과 사회에 해악이 될 수 있는 그 한심한 신념을 들고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지 마라. 어렵고 힘들게 성장해 왔어도 한국 과학계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우리는 이제 학문적 논쟁을 접고 법과 제도와 문화를 통해 당신들의 손과 발을 자를 것이다. 넘어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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