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논설위원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27년이나 계속되며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모두 패망의 길로 몰아넣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이었다. 스파르타군이 공격을 개시하자 아테네 최고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모든 시민을 성벽 안으로 불러들였다. 스파르타와 육지에서 맞붙는 것은 불리하니 주민을 대피시키고, 해상에서 스파르타의 본거지를 직접 공략한다는 전략이었다. 시민들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통했던 페리클레스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전략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큰 상처를 입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아테네를 휩쓴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좁은 성벽 안에 몰려든 탓에 전염병은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번졌다.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나갔다. 아테네는 군대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전염병의 불길은 페리클레스의 목숨마저 삼켰다. 페리클레스의 지혜가 아테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비극적 역설을 빚고 만 것이다.
페리클레스의 역설은 ‘제재-반발-응징’ 악순환에 빠진 한반도에서도 반복될 조짐을 보인다. 지난 6일 열린 한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발언자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요구한 쪽은 문재인 대통령이었고,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 “원유 공급 중단이 병원을 비롯한 민간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말을 한 사람도 푸틴이었다.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라는 촛불의 염원을 안고 청와대에 들어간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에 발을 맞추면서 ‘최대한도의 압박과 제재’를 앞장서 주장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당혹감을 안겼다. 결국 11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대북 원유 금수’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빠졌다. 미국 장단에 춤추던 한국 처지에선 멋쩍고, 우습고, 서글픈 현실이다.
한반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근본 원인이 미국 행정부의 오랜 ‘전략적 적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미의 무책임한 봉쇄 전략은 북한의 군사행동을 막기는커녕 더 대담하고 거침없는 도발만 허용했다. 그 결과로 한반도 정세는 북한-중국-러시아 대 한국-미국-일본의 신냉전 구도로 내달리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사실상 완료함으로써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최전방에 서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이대로 가면 중국의 더 큰 경제 보복을 막을 길이 없다. 한국과 중국이 너무 가까워질까 염려하던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겪는 것이 동북아 전략상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아 동북아시아 균형자가 되기보다는 미국의 말을 잘 듣고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는, 미국의 얌전한 푸들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반길 리 만무하다. 그러나 정치 행위자로서 문재인은 신냉전 구도를 격화시키고 미국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자기배반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대로 계속 악화한다면 문재인 정부하에서 페리클레스의 역설이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페리클레스의 동시대인으로서 아테네의 참상을 목격한 사람이 쓴 작품이다. 아테네인들은 무서운 역병에 휩쓸린 나라와 지혜로운 왕의 뒤늦은 자책을 묘사하는 이 비극의 현실성에 몸을 떨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한 번 쓰인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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