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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너는 누구 ‘빽’으로 들어왔니

등록 2017-09-14 18:39수정 2017-09-15 16:54

안재승
논설위원

눈을 의심했다. 처음엔 오타가 난 줄 알았다. 9.5%도 기가 찰 노릇인데 합격자의 95%가 ‘빽’을 동원했다니 말문이 막혔다.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충격 그 자체다. 채용 비리가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2012~2013년 강원랜드 인사팀장이 하루에 받은 청탁 전화·문자가 200통이 넘은 날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신입사원들끼리 “너는 누구 빽으로 들어왔니? 나는 ○○○ 빽이야”라고 그냥 자연스럽게 얘기했다고 한다.

공공기관 곳곳에서 채용 비리의 악취가 진동한다. 감사원은 5일 공공기관 53곳을 감사한 결과, 대한석탄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석유공사 등 5곳에서 채용 비리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장 조카, 원장 지인의 딸, 국회의원 비서관, 노조위원장 딸이라는 이유로 자격 미달인 지원자들이 채용됐다. 합격자를 사전에 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하거나 채용 절차 도중에 전형 방법을 바꿨다. 그래도 안 되면 합격자 수를 늘렸다.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한 것이다. “이게 공채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용이 안정되고 고임금을 받는 공공기관은 청년들에게 ‘꿈의 직장’이다. 이 꿈의 직장이 힘있는 자들의 먹잇감이 돼버렸다.

청년 실업이 사상 최악이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8월 고용 동향’을 보면, 청년 실업률이 9.4%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았다.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생까지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22.6%다.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자다. 합격은 둘째 치고 면접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지원서를 수없이 내보지만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 빽이 없는 ‘흙수저’ 청년들은 ‘금수저’들의 들러리 노릇을 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낙담한다. 채용 절차가 공정했다면 합격했을 청년들의 억울함은 또 누가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채용박람회에서 면접 방법을 배우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채용박람회에서 면접 방법을 배우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채용 비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솜방망이 처벌’ 탓이 가장 크다. 청탁을 하는 사람이나 청탁을 받는 사람 모두 힘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힘으로 법망을 빠져나간다.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사건의 1심 판결이 13일 열렸다. 금감원은 2014년 임영호 전 자유선진당 의원의 아들을 법률전문가로 채용했다. 임 전 의원은 최수현 당시 금감원장과 행시 동기로 절친한 사이였다. 임 전 의원의 아들은 로스쿨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돼 변호사 경력이 없는데도 선발됐다. 금감원이 채용 절차 도중에 지원 자격을 완화하고 평가항목을 유리하게 바꿔준 덕분이다. 금감원은 최 원장이 물러난 뒤 지난해 12월 내부감사를 벌여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최 원장의 혐의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사 담당 임원 2명만 기소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방아쇠가 따로 있어 보이는데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어 미완의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권성동·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도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원랜드가 내부감사를 벌여 2015년 2월 수사를 의뢰했는데, 검찰은 그동안 권 의원은 조사하지도 않았고 염 의원은 한차례 서면조사만 했다.

특단의 조처가 나와야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 330곳 전체를 전면적으로 감사해야 한다. 채용 비리가 드러나면 모두 합격을 취소시키고 연루자들은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해야 한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는 채용 비리를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단독] 염동열 의원 ‘강원랜드 채용 청탁’ 55명 명단 입수

관련 기사 : [단독] “4백명 청탁자가 1천명 채용 부탁”…강원랜드는 ‘청탁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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