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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내희 칼럼] 저금리와 ‘김생민의 영수증’

등록 2017-09-17 18:41수정 2017-09-17 19:03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푼돈 모아 목돈을 만드는 전략”을 가르치는 김생민은 충분히 “어려운 시대의 ‘롤모델’로 꼽힐” 만하다. 다만 그래도 김씨처럼 아끼고 아낀다고 지금 같은 저금리의 시대에 목돈 쥘 사람들이 많아질까, 사람들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하는 의문까지 지울 수는 없다.

지난주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이 10년 만에 금리를 인상한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현재 0.2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긴 했지만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올 안에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것이다. 0.25%라면 예금이나 채권을 통해 이자 수익을 낼 수 없는 초저금리, 실질적 마이너스 금리다. 금리가 이런 초저공비행을 하는 나라는 한둘이 아니다. 오랫동안 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금리를 유지해오던 미국은 최근에야 겨우 1.25%까지 인상했고, 일본은 지난해에 -0.1%로까지 낮추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다. 한국은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무작정 낮출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지난해 6월 이후 1.25%로 아주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가 낮으면 저축보다는 대출이 유리해진다. 근년에 들어와 한국에서 저축률은 크게 떨어진 반면에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과거 국내 저축률은 20%를 상회하며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으나, 아이엠에프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금융자유화가 강화된 뒤로 계속 떨어져 2010년에는 2.8%를 기록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와서 8.66%를 기록하며 오이시디 5위로까지 올랐으나, 저축률이 그렇게 오른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워낙 불투명해 사람들이 허리끈을 바짝 조인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면에 대출로 인한 가계부채는 무섭게 불어났다. 지난 20년 동안 가계부채가 늘어난 비율은 1997년 211.2조원에서 2016년 1344.3조원으로 여섯 배 이상이나 된다. 같은 기간에 국내총생산(GDP)이 506.3조원에서 1637.4조원으로 세 배 조금 넘게 늘어난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고 하겠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은 저금리 시대의 현상으로서, 사람들이 저축보다는 대출에 의존해야만 해서 생긴 일로 여겨진다.

최근에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청취자가 보내온 소비 내역이 담긴 영수증을 연예인 김생민이 보고 소비 행태를 분석해서 조언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속물이다. 연예인인 김씨가 갑자기 사람들의 경제 문제 상담자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그의 생활태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동안 인기를 크게 누리지는 못했으나, 그는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또 방송 출연료를 저축해 집을 장만하는 등 절약이 몸에 밴 생활을 해온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그의 그런 삶의 방식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모양이다. 문화방송(MBC)의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그에게 ‘구두쇠’라며 몰아붙였다고 해서 사회자 김구라의 하차를 요구하는 움직임까지 있었다고 하니, 김생민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를 짐작할 만하다.

요즘처럼 살기 어려운 시대에 절약하는 삶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연예인이 인기를 얻는 것을 나쁘게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월요일치 <한겨레>의 ‘지금은 ‘생민라이프’ 시대’ 기사가 전해주듯 “푼돈 모아 목돈을 만드는 전략”을 가르치는 김생민은 충분히 “어려운 시대의 ‘롤모델’로 꼽힐” 만하다. 다만 그래도 김씨처럼 아끼고 아낀다고 지금 같은 저금리의 시대에 목돈 쥘 사람들이 많아질까, 사람들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하는 의문까지 지울 수는 없다.

저금리 시대가 펼쳐진 것은 돈이 돈 버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은행이 개인들에게 대출해주는 일은 과거에는 드물었으나 이제는 그런 대출이 예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1998년 27.7%이던 은행권의 가계대출 비중도 2016년에는 43.3%로까지 치솟았다. 개인 대출이 이렇게 느는 동안 ‘예대이자’, 즉 예금이자 대 대출이자의 차이도 커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에 이 차이는 더욱 커져서 국내 시중은행은 2013년과 2016년 사이에만 약 10조원의 이자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돈이 돈 버는 세상’은 아무나 돈으로 돈 버는 세상이 아니다. 돈으로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가 큰돈을 버는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사람들이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임금이 계속 턱없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좋은 효과를 거두길 기대하지만, 나는 그래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없애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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