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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재벌 경영권 승계, 록펠러가가 주는 교훈 / 박현

등록 2017-09-17 18:42수정 2017-09-17 18:55

박현
경제에디터

미국 록펠러 가문은 미국 자본주의 250년 역사에서 최대 부호로 기록되는 재벌이었다. 창업자 존 록펠러가 1937년 사망할 때 그의 재산은 현재 화폐가치로 3400억달러(약 384조원)에 이르렀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약 2%에 이르고, 생존하는 최대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재산(860억달러)의 4배, 이건희 삼성 회장(151억달러) 재산의 2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록펠러는 미국의 상속세율이 70%로 강화된 이후 이에 따른 첫 기업인이라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 80년이 지난 지금 록펠러가 후손 300여명의 전 재산은 34분의 1로 줄어든 100억달러로 추정된다.

재산만 줄어든 게 아니다. 미국 석유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던 스탠더드오일은 1911년 반독점법에 따라 34개 회사로 분할됐다. 창업자의 외아들인 록펠러 주니어는 스탠더드오일 이사까지 승진했으나 1910년 회사의 정치자금 제공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3세 중에서 창업자가 일군 사업(체이스 맨해튼 은행)에 관여한 인물은 데이비드 록펠러가 유일했는데 그도 올해 초 사망했다. 창업자 가문이 떠났으나 스탠더드오일은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으로 이어지면서 전문경영인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록펠러가는 과거의 재벌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선재단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록펠러가의 역사는 미국 자본주의의 변천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1870~80년대 재벌이 등장해 70여년간 독점적 이윤을 누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두 세대를 넘어서까지 경영권을 세습시키지는 못했다. 반독점법과 상속세 등이 엄격하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창업자 가문의 지분은 줄어들자 경영권은 자연스럽게 전문경영인에게 넘어갔다. 미국에서 소유과 경영의 분리는 이렇게 정착됐다.

일본도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재벌이 출현했다. 이 재벌들은 1920~4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물적 토대를 제공했다. 2차 대전 후 연합군사령부에 의해 해체당한 뒤에는 사장단회의라는 느슨한 조직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외부 충격에 따른 것이었지만, 결국 일본 재벌도 70~80년 만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 재벌의 역사도 거의 70년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벌은 여전히 창업자 가문이 3세, 심지어는 4세까지 경영권을 세습 중이다. 오너경영이 빠른 의사결정과 장기적 안목에서의 통 큰 투자 등 장점도 지니고 있지만 ‘경영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성공 케이스는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창업자 가문 후손들은 어떻게 경영권을 승계할지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법을 지키면서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상당수가 편법·불법으로 이를 시도하다 전과자 신세가 되고 있다. 3~4세 승계가 축복이 아니라 비극이 되는 형국인데, 이 비극이 한 가문, 한 재벌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경제 전체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삼성은 이런 승계작업의 맨 앞에 서 왔다. 1990년대부터 전환사채(BW) 저가 발행과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3세 승계 작업을 추진해왔다. 다른 재벌들은 이를 ‘교과서’로 삼아 모방했다. 그런데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총수 일가로는 첫 실형 선고를 받음으로써 이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록펠러가가 법에 따라 70% 상속세를 내면서 소유과 경영 분리의 분기점이 마련됐던 것처럼, 한국 재벌사에서도 곧 ‘미국의 1937년’ 같은 역사적 순간이 오길 기대한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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