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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북악스카이웨이 / 임범

등록 2017-09-18 18:52수정 2017-09-18 19:13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보름 뒤면 추석이다. 요즘처럼 쾌청한 날씨라면 한가위 보름달이 더없이 크고 밝을 것 같다. 서울엔 해마다 추석 때면, 꼭 추석이 아니어도 날이 맑아 시계가 트인 날이면 홍역을 치르는 길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남산 전망대까지 가는 길인데 오래전에 추석 보름달 구경하겠다고 차 몰고 들어섰더니 입구부터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참을성 없는 나는 바로 차를 돌려 나왔다. 수년 전부터 이 길엔 일반 차량이 들어갈 수 없게 됐다.

남은 한 길은 ‘북악스카이웨이’, 요즘 이름으로 ‘북악산길’이다. 이 길 중간, 높은 곳엔 북악팔각정이 있다. 거기 서면 맑은 날엔 관악산, 청계산,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 편도 일차선 도로여서 팔각정 주차장에 차들이 몰리면 길이 막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차량이 많은 날엔 주차장 입구를 성북동 쪽 한 방향으로만 내주는데, 심한 날엔 성북동 쪽으로 500m 넘게 차들이 줄을 선다. 그럴 때면 또 어김없이 비좁은 갓길에 불법 주차하는 차량들이 급증한다. 날씨가 더없이 맑았던 지난 주말엔 오후부터 새벽까지 하루에 네 차례 이상 북악스카이웨이로 주차 단속을 나갔다고 종로구청 쪽은 전했다.

서울 사람들, 갈 곳이 뻔한 거다. 수백미터씩 줄지어 선 자동차 행렬이 미련해 보이기도 하지만 짧은 생각이다. 놀러가는 데에 목적이 그렇게 중요할까. 어쩌면 경관은 핑계이고 놀 수 있는 한가한 마음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팔각정 가도 경치 구경 십분 넘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야외에서 맥주도 팔지만 차 때문에 술을 마시지도 못할 거고. 기다린 시간보다 훨씬 짧게 머물다 내려간다. 편지를 1년 뒤에 배달해준다는, 큼지막한 ‘느린 우체통’이 여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여기 오는 데 걸린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길에 들어서면 차량 정체 말고 신경 쓰이는 게 또 있다. 자전거다. 자하문에서 팔각정까지 오르막 경사가 계속 이어지는 ‘업힐도로’여서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이 길은 성지로 꼽힌다. 그런데 도로 폭이 좁아 뒤에 오는 자동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고 자전거를 앞지르기가 쉽지 않다. 자전거 동호회 사이트에 이 길이 주제로 올랐다. 댓글들이 갈린다. ‘좋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많은데 굳이 그 위험한 코스를 가는 이유를 이해 못 합니다.’ ‘저 같으면 차도 없애고 산책 및 자전거 도로로 만들겠습니다. 아님 주말과 공휴일만이라도 자동차 없는 도로로.’ ‘이 도로에서 자동차의 운행속도를 낮추는 방안도 함께 고려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최근에 이 길가 여러 곳에 ‘자전거는/ 우측으로/ 안전주행’, ‘굽은 길은/ 천천히/ 안전주행’이라는 표지판이 붙었다. 자전거를 못 타게 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자전거의 안전운행을 유도하기 위해 서울시가 만든 거다. 실제로 길이 위험해 보이지만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이 길의 교통사고가 일반 도로보다 적은 편이다. 구불구불한 경사길이어서 조심을 많이 하기 때문일 거란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같이 다니는 게 정답일 거다. 알다시피 이 길은 김신조 간첩사건 뒤 청와대 경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시민에게 드라이브 도로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1968년 개통됐다. 1975년까지 통행료를 받았고, 도보통행이 완전히 허용된 건 1988년부터다. 사연이 많지만 지금 보면 이 길처럼 산에 차분히 붙어서 산과 나란히 달리는 길도 드물 것 같다. 그건 길이 좁기 때문이다. 아끼고 조심하고 참으면서 다녀야 할 거다. 길을 넓히거나 다른 뭔가를 짓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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