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논설위원
세탁소집 딸은 대구 경북여고를 나왔고 경비원 아들은 대구 영남고를 졸업했다. 사법시험(24회) 동기요, 사법연수원(14기)에서도 같은 반이었다. 1996년 동시에 국회에 진출했는데, 판사는 김대중에게 갔고, 검사는 김영삼 쪽으로 향했다. 21년이 흘러 여당 대표와 제1야당 대표로 맞닥뜨렸으니 제법 질긴 인연이다.
두 사람, 묘하게 닮은꼴이다. 둘 다 불같은 성격에 주장이 강한데다 표현도 직설적이다. 공격적 언사로 ‘설화’가 잦은 점도 비슷하다. ‘추다르크’, ‘돈키호테’란 별명에서도 앞뒤 재지 않고 옆길 돌아보지 않는 저돌성이 드러난다. 남들이 뭐라든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성품이라 ‘독불장군’ 소리도 좀 들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18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그렇다고 도맷금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박주선 의원은 ‘추미애-홍준표 막말동맹’이라고 했는데, 추 대표가 무척 억울해할 거다.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 (국회의원) 배지 떼라.” 오래전 홍 대표가 추 대표에게 했던 말이다. 이건 그냥 ‘막말’이다.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색깔공격, 인신공격도 주저하지 않는다. 막말에도 메달이 있다면 금메달감이다.
홍 대표 개인은 남는 장사를 했다. ‘못 말리는 막말 정치인’이란 불명예를 얻은 대신 보수의 중심에 올라서는 실리를 챙겼다. 홍 대표를 얼굴로 내세운 보수는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보수의 안정감’은 옛말이 됐다. ‘럭비공 홍준표’ 이미지 탓이다. 보수가 원래 관용, 배려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사실도 잊히고 있다. 보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홍준표는 점점 보수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추 대표 발언의 문제는 정치적 맥락에서 비롯한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이 안 됐다고 국민의당을 향해 ‘땡깡 놓는 집단’이라고 공격한 게 대표적이다. 국민의당의 격한 분노를 촉발했지만 지지층에선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얻어냈다.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태 당시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머리 자르기”라고 한 것도 과한 비유지만 핵심을 짚은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울고 싶은 상대의 뺨을 기막힌 시점에 때리는 ‘적시타’가 되어 의도와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결국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리사과가 나왔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선 뒤에 추 대표 본인이 유감 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소야대 정국을 힘겹게 헤쳐나가야 하는 여권으로선 ‘추미애 리스크’라는 요인을 변수로 상정해야 할 지경이다.
한때 ‘여성 대통령감’으로 조명받던 추 대표는 ‘노무현 탄핵’에 동참한 후폭풍을 맞고 삼보일배까지 했지만 17대 총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상처는 깊었고 후유증은 길었다. 이때 겪은 트라우마 탓인지 내내 비주류로 전전하다 지난해 ‘친문재인계’의 전폭적 지원 아래 비로소 대표에 당선될 수 있었다. 추 대표가 강성 발언으로 열혈 지지층을 끌어모아 정치 자산으로 삼으려는 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다른 편’에 대한 자극적 언사가 불러일으키는 핵심 지지층의 환호는 중도층, 반대층의 환멸을 초래한다. 그리고 대중의 정치 혐오를 부추겨 정치의 가치를 추락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추 대표가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
노무현의 말은 강하지만 가슴 찡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냈다. 문재인의 말은 부드러워 진심 어린 호소력이 있다. 추미애의 말은 선명하지만 ‘적의’가 번득여 마음을 흔드는 울림은 부족하다. 말로 하는 게 정치다. 말에 돋친 가시가 상대 심장을 찌르면 곤란하다. 완곡하지만 설득력 있고, 은근해서 더욱 정곡을 찌르는 정치 언어, 언제쯤이나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