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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천재와 미친년 / 이라영

등록 2017-09-20 18:30수정 2017-09-21 15:19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최근 두 ‘천재’에 대한 부고 기사를 접했다. 한 사람은 천재 교수, 비운의 천재, 야한 천재, 공공의 적이 된 천재로 불리며 불화했던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다 아는 마광수 교수다. 이 ‘천재’만큼 한국에서 관심을 받진 않으나 어떤 언론에서 “천재 페미니즘 이론가”라는 이름을 붙여준 또 다른 사람은 <성 정치학>의 저자 케이트 밀릿이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화두를 던졌다. 마광수는 생전 “‘영웅’을 기다리거나 숭배하는 것에 비해 ‘천재’를 우대하거나 보호하는 데는 인색한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마광수, ‘천재에 대하여’)

소설이 사법적 영역에 들어가 재판의 대상이 되고 작가가 구속된 사건은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매우 불행하다. 그의 구속으로 문학적 상상력이 확장되고 성장할 기회를 우리 사회가 함께 잃은 셈이다. 안타까운 또 다른 사실은 그의 작품이 제대로 비판받을 기회조차 상실했다는 점이다. 검열이라는 제도적 희생자의 창작물은 비판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된 사람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순간, 상처를 후벼 파는 짓이 된다. 그렇게 문학성을 논할 기회를 차단당했다. 사후 쏟아지는 천재라는 호명을 마뜩잖게 바라보는 이유다. 그에게 보내는 천재라는 찬사야말로 이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남성이 (어디까지나 남성의 시각에 한정된) 성의 자유를 말하면 ‘시대’에 저항한 천재가 된다. 반면 여성이 성의 자유를 말하면 ‘계급에 관심 없는 중산층 엘리트 페미니스트’, 간단히 ‘미친년’이다. 언제나 ‘시대의 피해자’는 남성이고 그렇게 피해자가 되어서 다른 성을 억압해도 마땅한 위치를 가진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의 욕망을 ‘인간 보편의 욕망’으로 만들어 여성은 이 대상화에 충실하도록 길러진다. 전통적으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종속시켰다면, 이러한 틀에 저항한다는 쪽에서는 욕망의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섹시즘(sexism)을 섹시즘(sexy-sm)으로 둔갑시킨다. 섹스는 때로 남성의 여성 지배를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매와 관계, 폭력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라의 창조주는 천재가 되었을지라도 ‘반성하지 않은 사라’는 여전히 미친년이다. 강산은 변해도 미친년들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매번 탄생한다. 미친년으로 불려서 미친년이 되고 미친년이 되지 않으려다 미쳐간다. 작년 여름 열렸던 사진작가 박영숙의 전시명은 ‘미친년 발화하다’였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작업한 그의 ‘미친년 프로젝트’는 멀쩡한 미친년들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의학적으로 미치지 않았더라도 사회적으로 미쳐버린 여성들이 많다. 진짜 미칠 지경. 차오르는 말로 몸이 터져버릴 듯한 순간, 발화(發話)하지 못해 발화(發火)되는 순간, 그렇게 수도 없이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 다다른다. 여성의 ‘미침’은 때로 자신을 억압하는 자리(역할)를 벗어나는 행동이다.

‘검열의 희생자’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사이에 메꿔야 할 말이 많다. 케이트 밀릿이 <성 정치학>에서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나 헨리 밀러의 작품을 비판했듯이, 때로 해방을 말하는 성은 오히려 여성의 성을 더욱 ‘종속적인 성’으로 만든다. 로런스나 밀러도 나름 ‘성 해방’을 위해 기존의 관념에 저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을 발표하고 밀릿은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수많은 조롱과 공격에 시달렸다. ‘이 구역의 미친년’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훗날 수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사라의 창조주가 아니라 이제는 사라가 말할 차례다. 나는 왜 미친년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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