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회생활이 유지되고 모든 재생산이 이뤄지는 중심 장소다.” <제3의 길>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앤서니 기든스의 집에 대한 정의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은 ‘정신적 복지’에 결정적인 곳”이라고 말한다. 방과 가구, 벽 틈에서 나오는 냄새, 집 안 어딘가에 새겨진 “비밀스러운 기억”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 집이며, 그래서 나만의 “편안한 은신처”란 해석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서 집은 어떤 곳일까?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땅의 아버지 세대에겐 ‘비둘기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1960년대, 비운의 조선왕조 황손인 가수 이석이 노래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 포근한 사랑을 나누는” 곳으로서 집 말이다.
비둘기집이 노래되지 않은 지 오래다. 오늘날 집은 비싼 재화다. 한탕의 투기상품이며 도시인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브레이크 없는 엔진이다. 청년들에겐 버겁고 넘기 힘든 좌절의 장벽이자 빈곤의 핵심 요인이며, 가난한 아이들과 노인들에겐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한 서식지로 기능한다.
투기 광풍으로 나타나는 집에 대한 뒤틀린 인식은 그릇된 정부 정책의 산물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의 고통엔 아랑곳하지 않고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밀어붙여 전국을 투기판으로 만든 보수정부,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해온 권력·자본·언론의 삼각동맹이 조성한 산물”이란 게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취한 ‘8·2 부동산 대책’에 이어 10월에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집이 투기상품이 아닌 국민의 다정한 비둘기집이 될 근본대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실상 최소한의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할 기본권이다.
이창곤 논설위원 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goni@hani.co.kr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중개소 앞에서 한 시민이 시세표를 살펴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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