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보호막으로 생각했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연대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9월15일 노동자대투쟁 30주년 토론회에서 만난 전 현대중공업노조(현중노조) 정병모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세대교체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노조로 받아들이는 ‘1사1노조’ 운동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기아차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내쫓고 현대차는 1사1노조가 세 차례나 부결됐는데, 하청이 직영보다 갑절 많은 조선소에서 가능할까? 일주일 뒤 1사1노조가 통과됐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게 실화냐”고 몇 번을 되물었다. 9월21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대의원대회는 “현대중공업그룹사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중 조합에 가입한 자로 구성”하며 “일반직지회와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조합원은 지부 대의원대회 통과 후 지부 조합원 자격을 갖는다”고 노조 규정을 바꿨다. 대의원 132명 중 찬성 88명, 반대 44명, 찬성률 66.7%. 한 명만 반대했어도 부결되는 극적인 표결이었다. 세부 방안 논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가족이 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현대중공업은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 노동운동사의 축소판이다. 현중노조는 민주노조 태동-성장기(1987~1996)의 주역이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던 1987년 8월18일, 노동자 6만명이 지게차를 앞세우고 16킬로미터를 행진해 민주노조를 세웠다. 지난겨울 광화문 촛불처럼 울산에서 타오른 민주노조 불길이 전국으로 번졌다. 1988~89년 128일 파업, 1990년 골리앗크레인 파업으로 현중노조는 노동운동의 깃발이 됐고 민주노총 결성으로 이어졌다. “사랑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동지들이여”로 시작하는 노동가요 ‘골리앗의 그림자’는 노동현장과 대학가 인기곡이었다. 민주노조 정체-후퇴기(1997~) 현중노조가 먼저 망가졌다.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사내하청이 직영보다 많아졌고 2002년 어용노조가 들어섰다. 2004년 박일수씨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을 때 정규직노조는 분향소를 부수고 하청노조를 탄압하다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했다. 2009년 2만611명이던 하청노동자는 2014년 4만836명으로 급증했다. 세계 최대 비정규직 조선소,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어용시대’는 12년 만에 끝났다. 2013년 민주파 정병모 후보가 위원장에 당선됐고, 2014년 어용 대의원들이 물갈이됐다. 2015년 비정규직 노조가입 운동, 2016년 76.3% 찬성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에 이어 2017년 조선소 역사상 최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로 뭉쳤다. 블랙리스트와 체념이 미세먼지처럼 스며든 조선소. 2년 새 하청노동자 2만명이 잘린 공장. 정규직이 손 내밀어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하청인생. 이제 용기를 내면 정규직과 같은 식구가 된다. 원·하청이 어깨 겯고 싸울 수 있게 됐다. 1사1노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2008년 경제위기 당시 현대차와 한국지엠이 비정규직을 천 명씩 쫓아낼 때 당시 1사1노조였던 기아차는 아무도 잘리지 않았다. 내년이면 정년퇴직하는 정병모 위원장의 검버섯 핀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노동자대투쟁 30년 민주노조운동이 부활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 현대중공업~”을 다시 부를 수 있을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응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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