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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북-미 수교 / 고명섭

등록 2017-09-27 17:33수정 2017-09-27 19:06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6월23일 미국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청와대를 방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올브라이트에게 “미국의 지도자가 북한 지도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해 10월9일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이 워싱턴에 도착했다. 조명록은 북한군 정복 차림으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을 방문해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다음날 조명록과 올브라이트는 ‘북-미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미합중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국무장관의 방북에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10월23일 올브라이트가 한반도 전문가들을 대거 동반하고 평양에 도착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과 만나 두 차례에 걸쳐 회담했다. 클린턴의 방북이 11월로 잡혔다.

북한과 미국의 수교가 문턱까지 다가온 그때 돌발 사태가 잇달아 일어났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혼미를 거듭하더니 조지 부시가 앨 고어를 제치고 승리를 낚았다. 대선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클린턴의 방북이 미뤄졌다. 이어 중동평화협상 문제가 클린턴의 발목을 잡았다. 방북이 어려워진 클린턴은 이듬해 1월 김정일을 미국으로 초청했지만, 김정일은 응하지 않았다. 결국 부시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클린턴 정책’이 모조리 뒤집혔다. 북-미 관계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두 나라 정상회담을 주선하던 김 대통령은 후에 이렇게 탄식했다. “클린턴이 평양에 갔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는 그 순간에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북-미 관계는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까지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했지만, 최종 해법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하는 것, 그리고 ‘핵·미사일 포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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