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잠시 오늘 자 신문의 광고 지면을 둘러보자. 삼성 광고를 찾았는가? 이재용 부회장의 공판 결심을 앞둔 지난 7월부터 삼성은 <한겨레>, <제이티비시>(JTBC), <중앙일보>, <에스비에스>(SBS) 등 매체들에 대한 광고 집행을 대폭 줄였다. 모두 삼성 일가에 대한 보도에 앞장선 언론들이다. 지난 7월과 8월 두 달간 <한겨레>에 집행된 삼성 광고는 5건이다. 공판 과정에서 삼성 관련 보도가 상대적으로 뜸했던 군소 매체들에는 삼성 광고가 평균 15건 이상 집행됐다. 언어나 다름없는 숫자들이다. 국내 언론의 지면에 글을 실어본 필자라면 삼성에 대해 쓰는 게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안다. 우리야 용맹한 정의감을 뽐내면 끝이다. 언론사의 광고담당 부서에는 비상이 걸리고 데스크는 황급하게 편집권 방어 논리를 고안해야 한다. 기사가 발행되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언론사의 다음달 매출을 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펜 끝에서 시작된 책임을 언론사에 모두 전가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진보언론에서 삼성 비판하기는 삼성 다니는 친구가 사는 술자리에서 회장님 흉보기보다 어렵다. 며칠 전 <한겨레>는 삼성의 광고 탄압에 굴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멋진 일이다. 마침내 내가 이런 글을 써서 내보낼 수 있게 됐으니까! 역설적이지만 광고를 이용한 검열은 축소할 자본이 남아 있을 때만 작동한다. 더 줄일 자본이 없는 지경까지 되면 삼성의 위력은 공기에 스민 냄새처럼 휘발한다. 삼성 광고가 줄어든 게 언론사에 좋은 일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단언컨대 삼성에는 나쁜 일이다. 지금부터 증명하려 한다. 작년에 나는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 대책모임 ‘반올림’의 은밀한 청탁을 받았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 관한 기사를 언론이 다루지 않으니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반어법을 섞어 “삼성은 좋은 기업이다”라는 칼럼을 썼다. 이제 반어법 없이 말할 수 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외치는 사람들이 삼성 본관 앞에서 722일째 노숙 농성 중이다. 230여명이 반도체 직업병에 걸렸고 80여명이 죽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직업병 위험으로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퇴출된 반도체 제조업을 실리콘밸리가 삼성에 ‘외주화’한 것이다. 지난 8월 대법원은 반도체 공장 환경과 직업병의 인과관계를 마침내 인정했다. 삼성은 반도체 직업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에게는 500만원, 최순실씨에게는 500억원을 건넸다. “삼성은 나쁜 기업이다.” 나는 이재용 부회장의 공판 선고를 앞두고 줄어든 삼성 광고 횟수에 담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게 이 부회장의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한시적으로 침묵해달라는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란 것도 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이 부회장의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자유일 터다. 이 글의 마지막 단락은 독자들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었지만 일간지에서만 들을 수 없었던 기적 같은 한시적 문장들로 장식될 것이다. 다 같이 소리내어 읽어보자. 5년형은 너무 짧다. 뇌물공여, 횡령, 재산 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유죄인데 5년형은 너무 짧다. 확정판결에서는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까지 포함하여 검찰이 구형한 12년 이상의 형량이 나오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재판이 끝나고, 광고 집행을 둘러싼 전쟁이 막을 내리고, 화해가 성립하면, 삼성과 언론사와 시민사회 모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랑스러운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독방에 있을 그를 추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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