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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삼배구고두 / 임석규

등록 2017-10-08 15:42수정 2017-10-08 19:05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조선 임금 인조, 9단으로 쌓은 수항단(受降壇)에 앉은 청 태종 홍타이지. 추석에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에서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이름하여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다. 그나마 감읍해야 했다. 손이 뒤로 묶인 채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메는 이른바 ‘함벽여츤’(銜璧輿?)은 면해준다고 청은 한껏 생색을 냈다. 1637년이었다.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린 ‘삼배구고두’ 장면을 묘사한 삼전도비 부조.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린 ‘삼배구고두’ 장면을 묘사한 삼전도비 부조.
치욕은 반복된다. 몽골이 침략하자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고려는 참혹한 강토 유린에 결국 항복을 청하기로 한다. 고종이 항복 교섭을 위해 아우 창을 몽골에 파견한 게 1257년이었다. 고종을 승계한 원종은 직접 쿠빌라이의 궁전에 입조해 알현하고 제후로 봉해졌다. 황제 알현의 일반적 예법이 삼배구고두였다.

삼배구고두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수십만이 끌려갔고 가혹한 조공 목록이 하달됐다. 군사력 징발도 거부할 수 없었다. 조선 군사는 청을 도와 명을 공략해야 했고, 고려는 몽골의 일본 원정 전진기지가 됐다. 쿠빌라이는 일본 정벌 길잡이 역할을 명하는 칙서에서 “파도와 바람의 험난함을 구실로 삼지 말라”며 조금의 머뭇거림도 허하지 않았다.

<남한산성>에 나오는 조선의 현실이 현재 한반도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감상평이 많다. 중국에서 제국들이 충돌하거나 새로운 제국이 굴기할 때 한반도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몽골제국 말발굽을 벗어나지 못했고, ‘대청제국’ 활시위를 피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떤가. 황제를 꿈꾸며 질주하는 시진핑의 중국은 대놓고 ‘대국굴기’ 깃발을 내걸었다. 또 다른 제국 미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태세다. 그 틈바구니에 한반도가 끼여 있다. 슬픈 지정학적 숙명이다.

그러고 보니 고려가 몽골에 항복을 청한 해로부터 380년 뒤에 인조의 삼배구고두가 있었고, 그로부터 다시 380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다. 공교로운 일이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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