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로힝야 사태와 한국의 우파민족주의

등록 2017-10-09 22:27수정 2017-10-09 22:32

정의길
선임기자

지난 2012년 중국의 인도양 진출과 관련한 취재로 미얀마의 벵골만 연안 오지인 라카인주를 방문했다. 현재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위기가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그때도 로힝야족 사태로 계엄령이 선포돼 국제적 문제로 비화했다.

계엄령 때문에 천신만고로 찾아간 라카인에서의 활동은 극도로 제한됐다. 오후 5시면 통행금지가 실시됐다.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미얀마 당국의 인식을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 주도인 시트웨에서 훤한 대낮인 5시가 되면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호텔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일 일밖에 없었다.

호텔에는 로힝야족 지원을 위한 국제단체 관계자가 묵었다. 로힝야족 문제가 화제가 됐다. 당시는 아웅산 수치가 집권하기 전이었다. 군사정권의 위세가 여전했다. 나는 아웅산 수치의 민간정부가 들어서면 로힝야족 사태도 호전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말했다. 그 관계자는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로힝야 문제에서는 군사정부와 미얀마 다수 주민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일반 주민들이야 군사정부에 휘둘리겠지만 수치를 등에 업고 민주화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다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수도 양곤에 오자 그의 말이 실감났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민족민주동맹(NLD)의 오래된 핵심 관계자들도 로힝야가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민자이며 그들이 테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화운동 진영 내에서도 로힝야 문제를 보편적 인권문제로 접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웅산 수치가 집권한 지 1년이 넘은 2017년 8월말부터 미얀마에서는 다시 로힝야족 사태가 불거지고 있다. 1천명 이상이 사망하고 26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하는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에 대해 수치는 ‘가짜뉴스’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법이민자들의 테러 사태라는 인식을 고수하는 수치에 대해 노벨평화상 박탈 운동이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수치가 집권 전후로 태도가 돌변했다, 두 얼굴을 가졌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문제를 경험한 나로서는 수치의 그런 인식이 놀랍지는 않았다. 정치인인 수치가 절대다수 주민과 지지자들의 입장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문제는 수치를 등에 업은 미얀마 민주화운동 진영이다. 최근 사태가 불거지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신들 상당수는 로힝야족 문제에서 군사정부와 다를 바 없는 민족민주동맹 등 민주화운동 진영에 대한 비판이었다. 현지의 경험과 최근의 보도를 접하면서 나로서는 그들이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 인권 개념에 바탕한 민주화운동을 했다기보다는 미얀마의 다수 주민인 버마족의 민족주의에 경도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추상적인 개념의 민주화 이념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강렬한 민족주의, 그것도 우파민족주의가 대중을 사로잡기가 더 쉽고, 대중 역시 열광하기 마련이다. 최근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국내 대중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슬림인 로힝야는 죽여도 상관없다는 주장이야 논할 가치도 없다.

로힝야 사태를 식민부역세력 차원에서 논하는 주장은 한국 내에서 성장하는 위험스런 우파민족주의의 오도를 보여준다. 로힝야족은 버마를 식민통치한 영국이 방글라데시에서 데려온 부역세력이며, 한국에서는 친일세력을 청산 못하는데 미얀마의 수치 정권은 식민부역세력에 단호히 대처하고 있다는 주장 등이 난무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 지지세력 내에서도 한국의 핵개발, 사드 배치, 동성애, 노조 문제 등에서 강렬한 우파민족주의적 견해가 나온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비하면 다른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 지지세력의 외연을 넓힌 긍정적 측면이기도 하고, 전임 자유주의 정권에 비해 우파민족주의의 득세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힝야 문제에서 다른 견해를 허용하지 않는 미얀마와는 달리, 한국은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교환되고 서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나 핵개발 문제에서 우파민족주의 견해가 전례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입 진보’라고 놀린다. 우파민족주의 성향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묻지마 지지’ 성향이 결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