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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약탈적’ 전월세 인상을 막아라 / 박현

등록 2017-10-15 18:21수정 2017-10-15 19:07

박현
경제 에디터

6년 전 스웨덴 주거정책을 현지에서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애초 취재 목적엔 들어 있지 않았으나, 현지인들로부터 매우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돼 취재에 나섰다. 임대료를 매년 세입자 단체와 집 소유주 단체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의 일방적 통보에 수천만원의 전세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놀라운 얘기였다. 수도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세입자전국연합’을 찾아가봤다. 본부와 3천곳 지역조합에 직원 900여명을 두고 임대료 협상뿐 아니라 주택정책 입법 제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협상 덕분에 임대료는 대개 물가상승률이나 이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스웨덴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자고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니다. 스웨덴은 인구 1천만명, 1인당 국민소득 4만9천달러 등 우리와 여건이 많이 다르다. 이 나라처럼 국민의 기본권인 주거안정을 위해 적합한 제도를 슬기롭게 찾아나가는 지혜를 배웠으면 하는 것이다. 스웨덴도 20세기 초반엔 임대료 폭등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큰 사회불안 요인이 됐다. 1923년 결성된 세입자 단체들의 주거권 운동 등에 힘입어 1942년 임대료 상승폭을 제한하는 ‘임대료 통제법’이 만들어졌다. 1958년부터 세입자 대표와 비영리 임대회사 간에 임대료 단체협상을 벌이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정부는 1978년 ‘임대료 협상법’을 제정해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우리나라 주거정책은 흔히 부동산정책으로 불린다. 정권에 따라 경기부양 수단으로 쓰거나, 집값이 폭등하면 각종 규제로 이를 잡는 데 주력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러나 정작 집값은 잡히지 않았고, 700만 가구가 넘는 세입자 보호는 부수적 대책에 불과했다. 최근 5년만 해도 수도권의 아파트 전셋값은 32%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지수 상승률(6.6%)의 4.9배에 이른다. 세입자들은 강자가 약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고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약탈적’ 시장에 내맡겨져 있는 상태다.

우리도 임대차 보호법이 있긴 하지만 전세금 반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임대료 폭등을 견제할 장치는 전무하다. 정부는 전월세가 급등해 비난이 빗발치면 ‘빚내서 집 사라’거나 ‘빚내서 세 살라’는 식의 대응만 해왔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폭증해 큰 짐이 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임대료 규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일각에선 임대료를 규제하면 임대주택 공급을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독일 사례는 임대료 규제와 인센티브를 적절히 조화시키면 민간임대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임차인의 나라’답게 이 나라 임대차 계약은 기한이 없다. 집주인이 이를 해약하려면 3~9개월 이전에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는데, 그것도 세입자가 계약을 위반했거나, 집주인이나 그 가족이 이를 사용해야 하는 납득할 만한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세입자는 언제든 3개월 전에 통보해 해약이 가능하다. 또 대도시에서 임대료 인상폭은 주변 시세를 고려해 3년간 최대 15% 이내에서 가능한데, 표준임대료 일람표와 전문가 감정서, 최소 3개의 인근·유사 주택 임대료 현황 등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독일 제도는 임대료를 물가상승에 준하는 수준으로 유지해줘 일정한 수익이 보장되고, 세제 혜택도 주어지기 때문에 임대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나 전월세 상한제는 현황 파악을 위한 시스템을 우선 구축한 이후에 장기적 과제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은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 한데, 행여나 이 발언이 전월세 상한제 도입 무산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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