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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곡의 똑똑똑] 연극배우와 영화배우

등록 2017-11-12 18:24수정 2017-11-13 00:49

김곡
영화감독

연극배우가 영화판에 오면 화가 난다. 연기 좀 하려고 하면 감독이 컷! 삘 좀 받아 목소리가 높아지면 녹음기사님 귀 아프다고 짜증. 삘 좀 받아 행동이 커지면 카메라 기사님이 프레임에서 벗어난다고 짜증. 무엇보다도 딴 배우들 찍고 오겠다며 나간 촬영팀은 함흥차사. 대기시간이 무려 몇 시간씩. 삘은 지금 왔는데, 아아 지금 찍어야 하는데. 반대로 영화배우가 연극판에 오면 더 화가 난다. 삘 넣어서 연기했더니 객석에서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던 연출이 “잘 안 보여요.” 더 삘 올렸더니 이번엔 상대 배우가 “날 보지 말고 무대를 보고 해야죠.” 막상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오르니, 이놈의 상대 배우님들 연습한 대로 안 하고 마구 애드리브 날리고, 받아치진 못하겠고. 컷 해줄 감독님은 보이질 않고, 어둠 속에서 자신만 바라보는 관객의 눈들뿐. 아아아아. 나 혼자서 맘속으로 컷. 컷. 컷. 아아아아.

연극배우와 영화배우의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연극배우는 관객 앞에 서 있는 반면, 영화배우는 관객 앞에 서기 전에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영화배우는 카메라에 매개되지 않으면 관객 앞에 설 수가 없다. 영화에선 카메라도 상대 배우인 것이다. 좋은 영화배우는 상대 배우만큼이나 카메라와 합을 맞추고 동선을 맞출 줄 안다. 영화배우에게 카메라는 최초의 관객인 것이다. 클로즈업이라면 그는 나머지 감정은 모두 생략한 채 손가락 하나에 연기력을 집중하기도 한다. 반대로 연극배우에게 그렇게 공간을 한정하는 카메라란 따로 없다. 차라리 그를 둘러싼 모든 공간의 점이 모두 카메라들이다. 연극배우는 어느 앵글로 봐도 바로 그 자세와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고로 감정의 과장은 필수불가결하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는 컷을 끊는다. 연출감독과 카메라감독이 개입하여 다음 컷을 준비할 틈을 위해서다. 연극은 한번 시작하면 컷이 없다. 연출도 감히 컷 하지 못한다. 연극은 통으로 지속하기 때문이다.

즉 연극배우와 영화배우의 차이는 프레임과 무대의 차이다. 프레임으로 찢은 뒤 재조합해서 완성되는 영화와, 관객의 지속되는 시선에 감금된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재현될 뿐인 연극. 그래서 좋은 영화배우는 컷과 컷 사이, 테이크와 테이크 사이의 간극을 버틸 줄 알며 똑같은 연기를 반복할 줄 안다. 심지어 손, 눈, 얼굴 따로 분할해내기도 한다. 좋은 영화배우는 분할에 능하다. 반대로 좋은 연극배우는 지속을 통과할 줄 안다. 그는 반복보다는 반대로 끊지 않는 것에 강하다. 그 자신 전체가 분할 불가능한 배우인 것이다.

그러나 더 심원한 차이가 있는데, 그건 바로 배역과 배우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연극배우는 주어진 배역에 자신을 맞춘다. 무대에서 배역은 자신을 드러낼 유일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배우의 경우 배우는 결코 배역에 종속되지 않는다. 배우의 개체성이 배역을 압도하며, 외려 배역은 그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빌려 가는 식이다. 우린 하정우의 캐릭터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스크린에서 하정우를 볼 뿐이다. 즉 영화엔 스타가 있다. 반대로 연극에 스타가 있을 수 없다. 거기엔 강동원과 하정우 대신 오이디푸스 왕과 햄릿이 있을 뿐이다. 즉 연극엔 스타 대신 고수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도 삶 속에선 배우들일 터다.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은 연극으로 가는 걸까, 영화로 가는 걸까. 스타들만 많아지고 고수들이 점점 없어지는 이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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