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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온수보일러

등록 2017-11-15 17:48수정 2017-11-15 19:08

전우용
역사학자

“우리(유럽인과 미국인)는 실내에 들어갈 때 모자는 벗고 신발은 신은 채로 들어가는데, 조선 사람들은 신발은 벗고 모자는 쓴 채로 들어간다.” “조선 사람의 집을 방문하면 귀빈용 자리라며 방 한쪽의 벽면에 기대앉게 하는데, 그곳은 열기로 그을려 있어 방의 다른 부분과 확연히 다르다. 방석을 깔고 앉아도 너무 뜨거워 엉덩이 살이 익는 것 같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조선의 풍습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그에 관한 책을 낸 서양인들이 거의 빼놓지 않고 기술한 내용들이다. 신발을 신고 실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바닥이 차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먼저 발바닥으로 온기를 느낀다.

한국인들은 천 년 넘게 부엌 아궁이의 열로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주거 생활을 영위했다. 고루거각에서 초가삼간에 이르는 집의 규모를 결정한 일차적 요소는 아궁이의 수였다. 대다수 서민 가정은 부엌 아궁이 한두 개로 집 전체를 덥혀야 했다. 자연히 온도는 방마다 달랐고 한 방에서도 위치에 따라 달랐다. 가장 따뜻한 방이 안방이고 가장 따뜻한 자리가 아랫목이었으며, 안방의 아랫목은 가장의 자리이자 귀빈의 자리였다. 다른 식구들은 추운 겨울날 밖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에나 잠시 아랫목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실내 한구석에 철제 배관을 노출시켜 공기를 덥히는 스팀난방은 1908년 대한의원 건물에 처음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팀난방은 1920년대부터 몇몇 부잣집들에도 침투하기 시작했으나, 한국인들은 방바닥을 덥히지 못하는 난방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방바닥에 폴리염화비닐(PVC)이나 철제관을 묻어 온수를 순환시키는 난방 시스템은 1961년 마포아파트 건립 때 처음 도입되었다. 그로부터 30년 안에, 전국의 거의 모든 집 방바닥이 바뀌었다. 온수보일러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나마 ‘온기의 평등’을 실현한 물건이다. 근래 한국의 가족 문화가 일방적 권위보다 평등한 소통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해온 데에도, 이 물건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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