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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중도’에 집착하는 안철수의 비극

등록 2017-11-22 17:03수정 2017-11-22 22:21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연대와 통합을 통해 국민의당은 3당에서 2당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도 정치세력이 모인) 2당이 되면, 집권당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면, 그의 행로는 분명해 보인다.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진 바른정당과 통합해서 ‘중도보수’ 정당으로 집권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다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어떻게 제2당이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건, ‘안철수의 셈법’으론 무의미하다. 홍준표라는 ‘돈키호테’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은 어차피 ‘중도보수’의 자장 속으로 빨려들어올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밖에선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안철수의 셈법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도’만큼 강력하고 폭넓게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점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자신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포기한 적 없고, 실패한 적 없는 ‘안랩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아닌가.

하지만 정치에서, 특히 대통령제 아래서 ‘중도’는 신기루일 뿐이다. 여야가 서로 싸우지 말고 중간쯤에서 타협해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현대 정치에선 어느 나라든지 정치세력들이 점점 더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정파적 다툼을 심하게 벌이는 게 현실이다. 여야 정당이 자꾸 양극단으로 치달리는 것 같으니, 광활한 중앙을 기반으로 한 ‘중도정당’ 가능성은 훨씬 커진 것처럼 보인다. 착각이다.

한국만큼이나 당파적 대결이 첨예한 미국에서 ‘중도층’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에드워드 카민스 인디애나대학 교수 등 일단의 정치학자들은 40년간 미국 선거 결과를 면밀히 조사한 끝에 “스스로를 ‘중도’(moderate)라 규정하는 유권자들이 실제로는 보수 또는 진보 성향이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중도 유권자’란 진짜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수·진보·무당파가 섞여 있는 것이며, 결국 ‘중도층의 선거반란’은 잡을 수 없는 파랑새와 같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중도=사쿠라’라는 등식에 익숙한 한국 유권자들은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안 대표가 그렇게 ‘중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안 대표는 처음부터 진보-보수의 이념적 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정책적 지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대표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했던 말, 품었던 생각을 돌아보면, 이런 주장만으론 가릴 수 없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2012년 정치에 들어서기 직전 펴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엔 그가 왜 정치를 하려는지 설명되어 있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한 제정임 교수에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기억을 얘기하며 “그렇게 무력한 사람들은 사회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또 척박한 보육환경을 예로 들며 “서민들은 물론 중산층까지 이런 형편인데, 낙후된 복지를 조금 확충하자는 정도의 얘기를 갖고도 ‘포퓰리즘’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고도 했다. 안철수의 이런 말에서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를 읽고, 젊은층과 진보 인사들이 그를 지지했다. 2017년 안철수의 말에선, 대중과의 공감은 사라지고 앙상한 정치공학과 자기합리화만이 묻어난다.

정말 궁금한 건, 굳이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어도 될 사람이 그렇게 변화무쌍한 변신을 하며 정치적 생존에 급급해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강한 권력욕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발심리 외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무력한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에 실패의 오점을 남길 수 없다는 사업가적 오기로 정치를 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물론 안철수 대표는 ‘진보-보수’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있고, ‘민주 대 반민주’라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비켜서 있다. 그래도 5년 전 대중이 자신에게 기대했던, 많은 젊은이를 열광케 했던 원천이 무엇인지는 되돌아봐야 한다. 그건 ‘중도’라는 환상을 좇아선 결코 얻을 수 없다. 사회 변화의 열망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가 종국엔 그 변화에 적대적인 세력과 손잡고 권력을 꾀하리라 예상하는 건 서글프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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