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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스누피

등록 2017-11-23 18:08수정 2017-11-23 19:35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삼촌은 조카에게 “스파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1920년대의 인기 만화에 등장하는 경주마였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 조카의 주요 모델은 애완견 개 스파이크였다. 못이건 핀이건 닥치는 대로 주워 삼키는 이상한 개였다. 그는 그림 한 점을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라는 잡지에 보냈다. 1918년에 첫 호를 낸 그 잡지는 별난 사람이나 사건, 숨겨진 진기명기의 고수들을 소개하여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이후 그 잡지사는 텔레비전 시리즈를 제작했던 것을 넘어 오늘날에는 인터넷 게임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그 소년이 보낸 그림이 실렸다. “스파키가 그린 핀과 못과 면도날을 먹는 사냥개”라는 자막이 붙었다. 이것이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스누피가 탄생한 배경이다.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연재되었고, 한때는 75개 국가에서 21개 언어로 2600개의 신문에 실려 3억5천이 넘는 독자에게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 <피너츠> 덕분에 4단 만화가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만화는 거의 전적으로 어린이 세계를 다룬다. 어른들도 존재하지만 그 모습이나 목소리는 등장하는 적이 드물다. 남자 주인공 찰리 브라운은 소심하며 자신감이 없다. 연을 날릴 줄도, 야구 경기에서 이길 줄도, 풋볼을 찰 줄도 모른다. 풋볼을 차려 하면 잔혹한 여자 친구 루시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낚아채 찰리 브라운은 허공에 발길질을 하다가 자빠진다. 친한 듯하나 대립의 각은 예리하다.

땅콩을 가리키는 “피너츠”는 ‘의미 없는 사소한 것’을 뜻하기에 슐츠는 그 제목을 싫어했다. 그는 자신의 만화에 심오한 철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함의를 담으려 했다. 사실 독자도 그런 의미 때문에 그 만화에 열광했던 것이다. 스누피가 이런 말을 한다. “난 어제 개였어. 난 오늘도 개야. 난 내일도 개겠지. 쳇. 승진할 희망도 없다니.”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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