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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군용담요

등록 2017-11-29 17:55수정 2017-11-29 19:27

전우용
역사학자

최근 중국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어느 동네를 범죄의 소굴로 묘사한 영화 한두 편이 논란거리가 된 바 있다. 통속영화가 대중의 통념에 영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중의 통념은 사실들과 무관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배후에서 사실들을 만들어내는 근본 요인들을 못 보는 경우가 많을 뿐. 사람들은 특정한 범죄들을 특정한 인종, 민족, 계층, 젠더. 지역성 등에 고유한 기질 탓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한국인들의 자의식과는 달리, 6·25 전쟁 중 미군은 한국인들을 ‘절도범죄에 특화한 민족’으로 묘사하곤 했다. “한국인 경비병이 지키는 군수창고에서 군수물자가 없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더 많이 훔쳐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의 친지들도 그를 치켜세운다”, “한국인들은 절도범죄가 발각되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등등. 군수창고에서는 온갖 물건이 사라졌지만, 실제 소요량보다 특히 많이 쌓아 두어야 했던 것은 페니실린 등의 의약품, 시레이션(전투식량) 등의 식품, 그리고 군용담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닥에 까는 침구를 요, 덮는 침구를 이불이라고 했으며 털실로 짠 깔개는 계담(??) 또는 세전(細氈)이라고 했다. ‘넓은 처마 아래 가는 털실 깔개 위’(廣廈之下, 細氈之上)는 학교를 의미했다. 조선시대 털실로 짠 깔개는 혼수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호화사치품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수입산 털실 깔개를 담요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20세기 벽두부터인데, 6·25 전쟁 중에는 군용 모포에 이 이름이 붙었다. 세상이 뒤집히는 것이 전쟁이니 요라고 부르면서 이불로 쓴 것이야말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터다.

군용담요는 겨울 옷감으로도 활용되었고, 적녹 보색대비로 인해 화투판으로도 적격이었다. 6·25 전쟁 이후 수십년간, 군용담요는 어느 집에나 있었다. 이제 이 물건은 역사 속에 묻혔지만, 우리가 가난 속의 추위를 어떻게 견뎠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소품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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